한국경제신문 A39면

중소기업연구원 원장 재임이후 : 2007년 4월 20일


소비자 위한 국제화를
(원제: FTA와 消費者主義)


한미 FTA는 앞으로 의회의 비준(批准)을 거치는 과정에서 두 나라 모두 각계 각 층의 많은 반대자들을 이해, 설득해야하는 어려운 과정을 남겨놓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협정의 결과 추정 손익계산이 우리 경제에 플러스로 나온다고 해서 이런 설득 과정이 쉬우리라는 보장은 없다.

많은 전제와 가정(假定)이 필요한 이해득실에 대한 계산보다는 이 협정이 궁극적으로 가져 올 우리 경제의 구조적 변화, 그리고 이 변화가 초래할 우리 경제의 경쟁력의 향상, 그리고 이 과정을 감내해 갈 수 있는 우리 경제의 체질에 대해 주목하고 이에 대한 인식과 믿음을 국가사회의 지도자들은 물론 국민 대다수가 공유해야만 이 협정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진정한 국제화의 길을 가로막는 가장 큰 저해요소는 경제의 본질적 문제를 소비자 내지 수요자의 입장에서 보지 않는 사고(思考), 그리고 여기서 파생되는 각종 정책과 제도, 관행에 있다.
이번 한미 FTA의 타결 과정과 그 이후에 양국 내에서 공히 일어나고 있는 일부 국제화의 시각에서 수용될 수 없는 국익우선의 주장과 이해계층이나 특정산업 보호 논리들은 바로 이런 사고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머지않아 추진될 한ㆍ중 FTA에 이어 한ㆍ일 FTA도 하게 될 것이다.
필자의 경험과 판단에 의하면 이 나라들과의 FTA 협의 과정은 미국과의 경우보다 훨씬 더 어려운 과정을 겪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나 이 나라들 모두 아직도 공고(鞏固)한 공급자 위주의 경제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더욱 그렇다.
개방화 과정에서 예상되는 핵심적 어려움은 바로 해당국들이 갖는 경제구조의 본질적 문제점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다.

한미 FTA를 시작으로 계속될 각 국과의 FTA를 성공적으로 타결하고 이를 계기로 한국경제가 보다 심화된 국제화의 장(場)을 열어 가려면 경제주체들의 획기적인 인식전환이 선행돼야 한다.
그 것은 바로 경제운영의 궁극적 목표를 소비자 후생증대에 두고 모든 문제를 소비자 중심으로 사고하는 소비자주의(消費者主義)의 확립이다.

정부에 요구되는 것은 지원과 보호를 통해 공급자에 대한 배려를 우선하는 공급자 위주의 경제구조에서 과감하게 벗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만 우리의 경제제도 및 관행을 국제규범에 적합하게 개편할 수 있으며, 세계를 조망하는 국가경영전략의 수립도 가능해진다.
나아가 기업 활동을 제약하는 각종규제를 과감히 제거하고 경쟁력을 조장·자극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부의 역할과 기능이 바뀌어 질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산업이나 품목을 주요 기준으로 편성돼 있는 정부의 조직원리에 근본적 변화 역시 불가피하다.

기업은 글로벌 경쟁시대의 주역(主役)으로서 세계의 유수기업과 겨루려면 무엇보다 세계 시장의 변화나 세계 방방곡곡의 소비자 선호의 변화를 잠시도 놓쳐서는 생존할 수 없다는 소비자지향적인 경영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이렇게 될 수 있도록 조직과 경영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이제 기업은 정부의 ‘지원이나 보호’와 ‘규제’는 표리(表裏)의 관계에 있다는 깊은 인식을 가지고 정부에 대해 갖고 있던 종래의 기대를 재고(再考)해야 한다.
즉 ‘정부의 시그널’ 보다 ‘시장의 시그널’, 즉 경쟁자의 행동과 수요자의 선택을 행동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말이다.

소비자들의 합리적인 선택능력은 이 모든 것의 전제(前提)다.
판별력 있는 유권자가 유능한 정치가를 양성하듯 현명하고 합리적인 소비자들의 보이지 않는 압력이 없이는 경쟁력 있는 기업도 합리적인 경제운용방향도 나올 수 없다.

한ㆍ미 FTA의 타결로 또 다른 단계의 국제화의 길로 들어서는 우리경제는 국제화의 노력을 소비자주의의 확립과 병행 추진할 때에만 진정 그 실(實)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