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 A39면

중소기업연구원 원장 재임이후 : 2007년 3월 16일


베트남, 호찌민의 逆說
(원제: 베트남의 장래와 호찌민의 逆說)


1990년 대 중반 시장경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이후 베트남은 연 평균 8% 내외의 높은 성장을 지속하고 있어 우리나라의 교역, 투자 대상국으로서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세계은행도 작년 말 ‘글로벌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합리적인 경제성장이 유지된다는 가정 하에서 2030년까지 ‘인구 1억과 GDP 천억 달러 개발도상국가 군(群)’ 에 새로이 진입할 나라의 하나로 베트남을 꼽는 등 이 나라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풍부한 자원, 상대적으로 높은 교육수준, 정치적 안정 등 장점이 많다.
특히 우리 중소기업들은 중국 다음으로 유망한 투자대상국으로서의 베트남의 가능성에 크게 주목하고 있고 이미 많은 기업들이 진출해 다양한 경제활동을 벌이고 있어 이 나라의 장래는 우리의 관심대상이 아닐 수 없다.

베트남에 관한 내외의 낙관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최근 이 나라를 둘러 볼 기회를 가졌던 필자에게는 이 나라의 장래가 밝게만 보이지는 않았다.
경제발전 과정에서 사회주의 국가가 갖는 본질적 한계가 도처에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공산당에 권력이 집중하는 데서 오는 피할 수 없는 부패, 비록 시장경제를 한다고 하나 사회주의적 정치와 정부 시스템이 가져오는 전반적 비능률은 어쩌면 당연하다 할 것이다.

조만간 이 나라도 사회주의적 정치체제와 시장경제적 경제운영이라는, 종국에는 조화될 수 없는 두 시스템 간 피할 수 없는 갈등에 직면할 것이다.
지금 같은 경제성장의 지속 여부는 이 갈등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를 극복하는 것은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정치체제가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되고 이 바탕위에서 시장경제체제가 보다 심화 되는 것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이 나라에서는 특히 어려울 것 같은 생각이다.
이 것은 바로 이 나라의 불멸의 지도자 호찌민(胡志明)과 그의 사상의 극복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장래는 호찌민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그는 프랑스, 미국 등 초 강대국과의 전쟁을 불굴의 애국심과 특유의 전략, 전술을 구사해 승리로 이끌면서 통일 베트남의 기틀을 세웠다.
그는 교육입국의 정신으로 전쟁 중에도 나라의 장래를 위해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혜안(慧眼)을 가졌다.
사후에 발견된 그의 전 재산이 지팡이와 옷 두 어 벌, 그가 평소 애독한 정약용의 ‘목민심서(牧民心書)’ 등 몇 권의 책이 전부였다는 사실이 말하는 것 같이 전혀 사욕(私慾)이 없었다. 자신의 시체 때문에 땅이 낭비되고 또 우상화 될 것을 경계하여 사후에 묘지를 만들지 말 것과 전쟁 종료 후 정치적 보복을 일절 하지 말 것 등 훌륭한 유언을 남겼다.
그래서 그는 전 세계의 사회주의 신봉자들은 물론, 심지어 전적으로 사상을 달리하는 사람에게서 조차 일정 부분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니 그의 나라에서 그가 받는 존경과 사랑 그리고 그의 영향은 사후 40년이 돼 오는 지금도 절대적이다.

그래서 최상의 사회주의 지도자를 가졌던 이 나라가 그 영향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고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나라 발전이 정체되는 역설을 떠올리게 된다.
그렇다면 북한에 호찌민과 너무나 대조되는 지도자가 있는 것은 언젠가 변화되지 않으면 안 될 그 시스템을 위해서 장기적으로는 남ㆍ북한 모두에게 오히려 다행일 수도 있을까?

필자는 만약 호찌민이 살아 후계자들이 그의 첫 번째 유언을 지키지 않고 그의 묘역을 성역화하고 극도의 우상화를 진행하고 있는 현실과 그 자신도 몰랐을, 그가 신봉한 사회주의의 원천적 한계가 드러나는 것을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상상을 해 본다.

한 나라의 장기 발전 여부는 결국은 그 나라가 선택한 전반적인 국가시스템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