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 A39면

중소기업연구원 원장 재임이후 : 2006년 9월 22일


연목구어(緣木求魚)


경총과 한국노총은 소위 노사관계 로드 맵 상의 ‘노조 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와 ‘기업단위 복수노조와 교섭창구 단일화’의 두 핵심 쟁점 과제를 같이 묶어 또 3년 유예(猶豫)하기로 합의했다. 정부도 이에 동의한 상태다.
정부나 노조 측 태도는 대체로 예상돼 왔기에 일단 접어 둔다.
문제는 경영계의 이 과제에 대한 인식과 해결의지다.

우선 경영계가 기업 단위별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대등한 비중의 문제로 생각하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식 교환의 대상으로 생각했다면 이는 분명히 단견(短見)이다.
기업단위 복수노조는 피할 길이 없다고 본다.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이 이미 양대(兩大) 노조로 구도가 굳어져 있고 이에 근본적인 변화가 예상되지 않기 때문이다.
경영계는 차제에 문제를 정면 돌파해야 한다.
복수노조의 원칙을 수용하되 합리적인 교섭창구 단일화 방안을 관철하는 것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교섭창구 단일화에 관한 필요사항을 사전에 정하는 것을 전제로 이 제도의 도입을 규정하고 있다.
이 전제만 충족된다면 이 제도는 노조원들의 노조의 결성과 활동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 내지 지지 의사가 전제돼야 작동할 수 있고 또 노조간 경쟁이 유발되어 노조활동이 정상화되는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전임자 임금 지급금지 원칙은 이와는 비중이나 성격이 전혀 다르다.
우선 입법단계를 볼 때 전자의 경우와는 달리 추가적인 입법조치의 필요 없이 오직 시행시기만 유예된 상태로 법제화가 완료돼 있다.
이 원칙은 ‘무노동 무임금’이라는 노사관계의 대 원칙의 일환으로 반드시 관철돼야 할 확실한 명분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모든 노사관계 정상화의 전제가 되는 핵심적 제도 개선 과제다.

우리 경제운영과 기업경영에 암적 요소가 되고 있는 한국 특유의 노사 관계와 노동운동 행태들, 즉 매우 저조한 노조 조직율, 이에 불구하고 극히 전투적인 강성(强性) 노조의 존재, 조합원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참여의지 없는 노조의 출현과 과다한 전임(專任) 노조 간부의 존재, 그리고 이들의 귀족화 현상, 사업장 내에서의 쟁의 행위와 이로 인한 기업 활동의 대안 없는 중단 현상 등은 대부분 이 원칙이 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또 복수노조로의 이행이나 세계적 경향과 역행하는 산업별 노조로의 전환 추세 역시 이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노조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지 의사가 없어도 노조의 결성, 노동운동이 가능한 환경이 조성돼 있는 한 노조의 민주화, 노사관계의 정상화는 결코 이룰 수 없다.
조합원들의 이런 의사는 노조의 운영과 활동을 위한 비용을 부담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전임자의 임금과 파업에 대비한 파업기금의 축적 등이 이 비용의 핵심이다.
노조가 이 원칙을 절대 수용하지 않으려는 것은 부담능력 부족이나 준비 미흡 때문이 아니고 이 원칙의 시행으로 초래될 노조와 노동운동의 개혁 가능성을 두려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경영계로서는 어떤 비용을 치루더라도 이 원칙을 빠른 시간 안에 확보해야 한다.
경영계가 이 원칙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이미 확립된 원칙조차 관철할 의지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교환돼서는 안 될 조건과 쉽게 교환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의식과 해결의지가 결여된 경영계, 노동운동의 특권화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노조, 무책임한 정부 세 당사자간에 이루어진 이 담합으로 우리 경제는 사실상 10년이나 누적돼 왔고 언제 해소될지 기약 없는 악성부채를 계속 짊어지게 됐다.
이 부채의 해소가 건전한 노사관계 정립의 첫 걸음이다.

이런 노사관계를 가지고도 기업이 계속 투자하고 경제가 잘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연목구어(緣木求魚)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