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시대신문 9월25일자, 3면

중소기업연구원 원장 재임이후 : 2006년 9월 21일


[남기고 싶은 말] 김인호 중소기업연구원 원장
화려한 외도(外道) - 아마추어의 교향악단 지휘에 얽힌 이야기②


음악을 들으면서 거의 대부분 손을 흔들면서, 때로는 튀김용 젓가락을 지휘봉 대신 쓰면서 지휘자 흉내를 내는 필자를 수 십 년간 보아 와서 필자의 지휘 실력을 어느 정도 아는 유일한 사람인 아내조차도 처음 교향악단 측의 이 제의를 받고 수락 여부를 상의하자 “당신, 제 정신이오?”라고 하면서 펄쩍 뛰면서 극구 만류했을 정도다.
정말 문제는 제의를 수락하고 나서부터 시작됐다. 우선 연주할 곡을 선정하는 일, 악보를 구해서 연습하는 일, 촉박한 시간 안 에 KBS교향악단 최종 리허설을 포함한 세 번의 연습 스케줄을 따르는 일이 바로 기다리고 있었다.
고심 끝에 차이코프스키의 ‘슬라브 행진곡’을 생각했다.
악보 한 번 본 적이 없지만 비교적 많이 들었고 멜로디도 대체로 익숙하기에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악단 측에 부탁하여 지휘자 용 악보, 소위 Full Score를 빌려서 지휘를 한다는 생각으로 드려다 보니 도무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이거 정말 잘 못했구나’ 덜컥 걱정이 시작됐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아내는 이제라도 교회 성가대 지휘자에게라도 레슨을 좀 받아야 할 것 아니냐고 필자보다 더 걱정이었다. 그러나 오기가 동했다. ‘이제 새삼 무슨 레슨이냐 평소 실력대로 하는 거지’

그 때부터 본격적인 혼자만의 연습이 시작됐다. 우선 집에 있는 디스크 중 마음에 드는 판을 골랐다. 그것은 유진 올만디가 지휘하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LP판이었다. 이판을 카세트테이프의 앞뒤로 들어가는 대로 반복 녹음을 해서 집에서, 차 안에서 시간 있는 대로 들으면서 악보를 보고 소화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러다 보니 내가 그 때까지 제법 음악을 안다고 생각하고 있던 것은 터무니없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많은 연주회를 다녔지만 악기 하나하나의 음색, 음의 높낮이 차이, 악기별 배열 등 정확히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유명한 지휘자가 지휘한 것을 비디오로라도 보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찾기 시작했다. KBS는 물론 웬만한 음반가게 전부를 뒤져 보았지만 어쩐지 이 곡은 비디오로 나와 있는 것이 없었다.
생긴 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체념했다.
이러다 보니 시간이 너무 촉박했지만 그 상태에서 수 십 번 반복 연습하고 나니 어느 정도 될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주를 이틀 앞 둔 날부터 연주 당일 오후의 리허설까지 세 번 KBS교향악단과 연습 및 조율하는 기회를 가졌다.
KBS교향악단의 방음 장치된 연습실에서 있은 연습 첫 날 기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백 명에 가까운 단원들의 신기해하는 눈초리들, 도대체 이 사람이 어떻게 지휘를 하나 보자는 듯한 묘한 표정들의 단원을 앞에 두고 딸이 사 준 진짜 지휘봉을 들고 처음으로 손을 들었을 때의 그 떨리는 기분은 참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다.
마지막 리허설에서 당시 연주회의 객원지휘자로 필자가 지휘한 곡을 제외한 다른 곡들을 지휘한 박 은성 교수(현 수원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는 자기는 전문 지휘자인데도 초기에는 지휘대에서 막상 지휘봉을 잡으면 몹시 떨렸는데 필자는 아마추어로서 의외로 너무 태연하다고 코멘트를 했다.
그러면서 아마 필자가 공직을 통해 청중 앞에 나가서 이야기하는 기회가 많았기 때문에 분야는 다르지만 훈련이 돼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태연함 뒤에 필자 본인이 느꼈던 그 초조함, 그리고 떨림, 흥분을 다른 사람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연주회는 대성공이었다.
아마도 KBS교향악단 역사상 가장 많은 청중이 모인 연주회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좌석이 없어서 2층 복도까지 꽉 차게 앉은 엄청난 청중 그리고 연주 결과에 대한 열광적 반응으로 KBS의 모험과 필자의 객기의 합작품인 이 작업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필자가 지휘하는 십 여분 동안 내내 너무 초조해서 손이 꽁꽁 얼었다는 아내도 청중들의 박수 소리를 들으면서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 쉬었다고 한다.
KBS는 이 연주회 전 프로그램을 녹화해서 세 번에 걸쳐 방영하기도 했다.
연주회가 끝난 직후 한 동안은 물론 아직까지도 필자는 그 때를 생각하면 고조되는 감정을 느낀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그 때의 연주 장면을 가끔 아내와 비디오로 다시 보면서 “참 겁도 없이 일을 저질렀지?”라고 하면서 웃음 짓곤 한다. 연주 후 한동안은 5년은 젊어진 것 같은 기분으로 지냈다.

아쉬운 것은 KBS가 당초 구상한 것과 같이 이런 식의 아마추어 회원이 부분적으로나마 지휘나 연주에 참여하는 특별 연주회를 매년 개최하려던 계획은 그 이후 실현되지 않고 있다.
적절한 사람을 찾지 못해서가 아닐 것이다. 다양한 방법으로 클래식 음악 애호가의 저변을 확대하면서 관객층을 넓히려는 경영적 마인드가 우리 KBS교향악단에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국영기관이 갖는 경영 효율의 한계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느낀다.

사람이 살다가 전연 뜻밖의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 것이 좋은 경우도 있고 나쁜 경우도 있다.
어찌됐건 직업인의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외도다.
결과적으로 이 경험은 필자에게는 엄청나게 좋은 경험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화려한 외도(外道)’라고 한 언론의 제목은 나름으로 적절한 것이었다.

누구에게나 그렇지만 특히 나라의 중요한 일을 하는 공직자나 정치인, 고위 경영자에게 꼭 필요한 덕목은 균형 감각이라고 본다.
전문성도 필요하고 일에 대한 열정이 중요한 것은 말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균형적 사고가 결여된 전문성, 일에 대한 집념은 때로는 독선과 아집, 편견으로 이어져 오히려 사회에 해가 되는 경우도 많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좋은 음악을 들으면 과중한 업무에서 오는 중압감에서 벗어날 수 있고 남에 대한 이해의 마음이 넓어지는 것을 느낀다.
이런 마음은 균형적 사고로 이어질 것이다.
소도 젖을 짤 때 좋은 음악을 들려주면 젖이 풍성하게 나온다고 한다.

점점 각박하고, 살벌해지는 우리 사회가 보다 따뜻해지고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어느 한 쪽에 치우침 없이 균형 있는 시각으로 우리 모두가 사회의 현안 문제를 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평소 소망이다.
좋은 음악을 좀 더 많이 듣는 분위기가 되면 그런 사회를 앞당기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반드시 클래식 음악을 고집할 이유는 없다. 우리 국악, 현대음악 다 좋다.
다만 필자는 클래식 그 중에서도 종교음악에 좀 더 심취할 뿐이다.
흔히 클래식은 너무 어려워서 처음에 취미를 붙이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전문가가 되려는 것이 아니고 즐기기 위한다면 조금만 관심을 갖고 열심히 들으면 금방 좋아지게 된다고 말하고 싶다.
필자와 오랫동안 같이 지낸 운전기사가 있었는데 전연 음악에 문외한이었던 이 사람이 항상 클래식이 흐르는 필자의 차를 운전하면서 빠른 시간에 필자 못지않게 클래식 애호가가 되어 가는 과정을 목격하면서 느낀 생각이다.

인생의 노년을 보내시는 독자 여러분들도 좋은 음악에 접하는 기회를 좀 더 많이 가짐으로서 여생이 보다 풍성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