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시대신문 9월 18일자, 3면

중소기업연구원 원장 재임이후 : 2006년 9월 15일


[남기고 싶은 말] 김인호 중소기업연구원 원장
화려한 외도(外道) - 아마추어의 교향악단 지휘에 얽힌 이야기①


KBS교향악단 50년 만에 아마추어에 지휘봉

2001년 2월 2일 저녁 여의도 KBS홀에서 있었던 KBS 교향악단의 「새봄의 교향악」이란 이름의 특별 연주회는 문자 그대로 특별한 연주회였다. KBS교향악단으로서는 50년의 긴 역사에 처음으로, 그 것도 전혀 검증되지 않은 아마추어에게 지휘봉을 맡긴 엄청난 모험을 한 연주회였다. 그 날 아마추어로서 그 연주회 프로그람 중 한 곡인 차이코프스키의 ‘슬라브 행진곡’을 지휘한 필자에게 그 날 밤이 갖는 의미는 더욱 특별했다. 경이로움과 흥분 그 자체였다고 표현해야 할까? 교향악단으로서의 엄청난 모험, 필자 개인으로서의 어쩌면 터무니없는 객기가 합해서 만든 사건이었다.

말 할 것도 없이 KBS교향악단은 우리나라 최고의 교향악단이다. 당연히 이 교향악단은 국내외 최고의 지휘자를 상임이나 객원으로 초청 지휘봉을 맡긴다. 아마도 국내 유수한 지휘자들 중에서도 이 교향악단을 한 번 지휘해보고 싶은 열망이 없는 사람이 없을 것이고 이를 이루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이리라고 짐작된다. 그러니 음악하고는 전연 인연이 없고 딱딱한 경제 분야 공직(公職) 외길로 수 십 년을 살아온 사람으로 알려진 김 인호란 사람이 갑자기 이 저명한 교향악단의 지휘봉을 잡게 됐다는 사실은 뉴스가 아닐 수 없었다.

「김인호 전 경제수석 KBS교향악단 지휘 맡아」, 「김인호 전 경제수석 KBS 신년 음악회 지휘」,「김인호 전직경제수석 지휘자로 ‘화려한 외도’」등은 연주회 이틀 전부터 국내 거의 전 언론(6개 종합 일간지와 2개 경제지)들이 이 사실을 큰 뉴스로 다루면서 뽑은 제목들이다. 기사들은 필자가 아마추어로서 KBS교향악단을 지휘하게 된 배경과 그 의미, 이렇게 된 과정, 필자의 음악인생, 음악관 등을 상세히 기술하는 등 크게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언론은 생리상 독자 대부분의 관심을 끄는 보도 가치가 있는 경우거나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다른 경쟁지가 다루는 기사를 취급하기 꺼려하거나 부득이 다루더라도 축소 보도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인호 전 경제 수석 지휘 맡아’ 언론서 집중 조명

그런 의미에서 이 사건은 이런 언론 관행의 완전한 예외였다. 정부에서 국장급이 된 후 장관급의 공정거래위원장과 경제수석을 끝으로 공직을 마치기까지 주요 업무의 실무자 또는 정책결정자로서 직책의 성격상 자의건 타의건 언론에 자주 이름이나 얼굴을 나타낼 수밖에 없었다. 공직자로서 아마도 언론에 가장 많이 등장한 사람 중 하나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때처럼 전 언론으로부터 동시에 집중 조명을 받은 적은 많지 않다.

원래 이 연주회는 KBS가 동 교향악단의 정기회원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개최한 신년 특별 음악회였는데 클래식 음악의 저변확대를 위해 좀 특이한 이벤트로서 꾸미기 위해 회원 중에서 아마추어 한 사람을 특별 지휘자로 초청 프로그람의 한 곡 의 지휘를 맡기도록 구상된 연주회였다. 언젠가 동 교향악단 회원지와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어 이런 저런 이야기 도중 농담 삼아 교향악단을 한번 지휘해 보는 것이 필자의 꿈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이 기사를 보고 필자에게 이 제의를 하게 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실제로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더라면 결코 그런 말을 하지 못 했을 것이다.

필자는 항상 우리나라의 클래식 음악 애호층이 너무 엷은 것, 외국 교향악단이 오면 엄청나게 비싼 입장권에도 불구하고 별로 음악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전 좌석이 매진이 되는 반면 KBS등 우리나라 교향악단들의 정기연주회는 많은 자리가 비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이를 항상 안타깝게 생각해 오던 터였다. 사실 어느 나라 교향악단을 막론하고 정기연주회가 최고수준의 연주를 제공하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KBS측의 이런 구상에 공감했다. 그러나 사안이 사안인 만큼 많은 망설임과 주저 그리고 수차례에 걸친 거절과 사양, 교향악단 측의 집요한 권유 등 우여곡절을 겪어 이 제의를 수락하기에 이르렀다. 아무도 모르지만 스스로는 혼자서 오랜 기간에 걸쳐 쌓은 지휘 실력을 한 번 테스트해보고 싶은 생각이 마음 한 구석에 잠재해 있었는지도 모른다.

외국의 경우 아마추어에 의한 교향악단 지휘가 그렇게 생소한 것이 아니다. 이 경우 대개 사회 저명인사인데 영국의 히스 전 수상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사실 얼마 전 우리나라도 다녀갔지만 길버트 카플란 같은 사람은 기업의 CEO이지만 아마추어 지휘자로서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에 관한 한 세계 최고의 지휘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이런 예가 없었다. 어떤 정치인이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자기 비용으로 지방의 작은 교향악단을 지휘한 적은 있다고 한다.

외환 책임론 구치소 있을 때도 악보로 마음 평정

필자는 음악을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 집에서 여유시간이 있을 때는 물론이지만 차 안에서도 주로 음악을 듣는다. 때로 독서를 하거나 원고를 쓰거나 자료를 읽는 등 일을 할 때도 대부분 음악을 들으면서 한다. 그러면 오히려 정신이 집중되고 능률이 오르는 경우를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젊었을 때 외국 유학 중에는 어떤 날 도서관에 가서 공부는 안 하고 헤드 폰을 끼고 좋아하는 음악의 여러 종류 음반을 비교해서 들으면서 하루 종일 보내고 온 적도 있다. 외환위기 책임론으로 구치소에 있을 때 헨델의 ‘메시아’나 베르디의 ‘레퀴엠’을 비롯한 좋아하는 종교음악 악보들을 넣어달라고 해서 지휘를 하는 기분으로 읽으면서 마음의 평정을 유지한 적도 있다.

그러나 필자의 음악에 관한 것은 이런 감상이 전부였다. 취미로라도 악기 하나 손 댄 적이 없고 그 흔한 중 고등학교 시절의 합창단 경험이나 교회에서 성가대조차 한 적이 없다. 필자와 아내는 거의 15년간 계속해서 KBS교향악단의 정기회원권을 구입하여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월 정기 연주회를 찾는다. 다른 연주회의 경우도 비교적 자주 객석을 찾는 편이다. 그러나 오케스트라의 지휘대는 멀리 떨어져 있는 구경의 대상이었고 진짜 지휘봉은 한 번도 만져 본적이 없었다. 그래서 필자가 지휘대에 선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잘 아는 친구들조차도 깜짝 놀라면서 믿기 어려워한 것은 전연 이상할 것이 없다. <계속>

* 본 칼럼은 2회에 걸쳐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