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위원회 여의도카럼

중소기업연구원 원장 재임이후 : 2005년 12월 30일


우리경제의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시작하는 말

우리 경제의 앞날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는 궁금증과 걱정이 아닐 수 없고 우리경제 최대의 문제다.
정부는 우리나라가 계속 높은 성장을 이어 가면서 멀지 않아 동북아의 중심 국가가 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다. 당연히 한국경제에 있을 수 있는 ‘또 다른 위기’의 가능성이나 이에 대한 논의에 대해서 부정적이다.
그러나 한편에는 한국경제가 지난 번 경험한 외환위기에 이어 ‘제 2의 위기’의 가능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보는 사람들도 많다.
또 이런 위기 가능성이 현실이 된다면 지난 번 외환위기보다 훨씬 심각한 구조적 위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느 쪽이 현실화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국경제의 장래는 어떠할까?

우선 우리경제가 가고 있는 모습을 단기적으로 관찰해보면 신중한 낙관론이 우세한 것 같다.
내년도 한국경제는 금년도보다는 좀 나아질 것이고 세계경제도 최소한 금년 보다 불리하게 움직일 것 같지는 않다고 보는 것이 지금의 일반적인 전망이기 때문이다.
내수가 조금 살아나는 것 같아 보이고 기업 활동에 대한 전망도 다소 나아지고 특히 최근 주가가 계속 상향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정부는 이런 상황에 매우 고무되어 있다.
특히 증시의 예상을 뛰어넘는 활황으로 증권가에서는 그동안 비관적인 시장전망을 내 놨던 사람들이 설 땅을 잃고 심지어 직장을 뜨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경제의 단기적 전망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하거나 그 전망의 호·불호에 따라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경제는 단기적으로 정확히 전망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경제이기 때문이다. 가변 요소가 너무 많을뿐더러 경제외적 요인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커서 경제가 가는 길이 경제전문가들의 예측 범위 안에 머물지 않는다.
최근 몇 년 간만 하더라도 많은 기관들에 의한 수많은 경제전망들이 발표됐지만 제대로 맞은 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이를 말한다.
이것은 오늘의 낙관적 전망이 언제든 다시 비관적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우리 경제의 앞날을 중장기적으로 또 구조적인 측면에서 관찰하면 우리 경제의 먼 앞길에는 명(明)과 암(暗)의 양 요소가 충분히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두드러진다.

우선 밝은 면을 보면 정보통신(IT)과 생명공학(BT) 분야의 강점을 들 수 있다. 최근 진위(眞僞) 논란으로 온 나라를 끝없는 혼돈에 빠뜨렸지만, 문제가 제기되기 전 황우석 교수로부터 생명공학 분야에 있어서 한국의 현 위치와 장래 가능성을 듣거나 진대제 정부통신부장관으로부터 앞으로 정보통신 분야에서의 한국의 발전 가능성, 예컨대 ‘IT839전략과 u-Korea구상’같은 것을 들어 보면 우리 경제의 앞날은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아 보인다.
최근의 한류(韓流)의 열풍에서 보는 것 같이 서비스부문의 발전 가능성, ‘기러기 아빠’로 상징되는 여전히 높은 교육열, 혁신 형 중소기업의 가능성,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새로운 시장으로의 진출 가능성 등은 우리 경제의 앞날을 밝게 하는 요소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경제의 앞날을 매우 어둡게 하는 요소들도 매우 많다.농업부문과 소상공인, 자영업자, 대부분의 서비스업을 포괄하는 웅대한 저생산성 부문의 존재, 이로부터 초래되는 경제 전반의 경쟁력, 소위 총 요소생산성의 점진적 하향 추세, 기업의 투자의욕 감퇴, 각 부문 양극화의 심화 등이 그런 요소들이다.
더욱이 경쟁력을 보장해 주는 경제시스템에 대한 사회적 합의 기반의 취약성, 세계최저의 출산율과 급속한 인구 고령화 추세 등은 보다 본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점들이다.

그렇다면 단기적인 경기의 호·불황을 떠나서 우리 경제의 먼 장래는 어떠할까?
우선 원칙론적으로 볼 때 우리 국가 사회가 앞에서 언급한, 한국경제가 가지고 있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 중에서 밝은 면을 잘 부각시켜 나가고 어려움 즉 위기적 요소도 이를 기회의 요소로 전환시켜 간다면 한국경제의 장래는 밝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이런 본질적 문제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돼 있지 않거나 실천과정에서 성공하지 못하고 있으면 우리는 어두운 미래를 맞을 것이 틀림없다.
경제는 ‘공짜가 없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평범한 진리가 장기적으로는 결국 맞아 떨어지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경제의 단기전망이 좀 나아지는 것이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점이 개선되고 있거나 개선될 가능성을 보임으로써 나타나는 결과로 보기는 어렵다.
우리 증시에 최근 반년 남짓한 시간에 불어 닥친 활황도 역시 무슨 큰 구조적인 변화의 결과를 반영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증시에서는 모든 사람이 낙관론에 빠질 때 오히려 증시 하락이 시작된다는 속설이 있듯이 모두가 낙관론 쪽으로 몰리게 될 때는 오히려 위험 신호일 수도 있다.

일부 산업부문이나 소수 기업들의 눈부신 경쟁력 향상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의 앞날을 매우 어둡게 하는, 앞에서 언급한 구조적인 요소들이 근본적으로 개선되는 징후는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또 시장경제시스템에 대한 사회적 합의 기반은 오히려 축소되고 있다고 보며 경제사회의 주요 문제에 접근하는 데 있어서 시장적 접근방식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핵폭탄보다도 더 한국경제사회의 위험요소가 될, 인구구조의 급격한 변화를 멈추게 할 어떤 유효한 처방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은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필요한 적절한 위기의식

이럼에도 불구하고 주로 현상적이거나 환경적 요인에 의해 경기 전망이 단기적으로 좀 나아지면서 한국경제의 장래에 대해 가져야 할 적절한 의미의 위기의식은 오히려 소멸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수 년 전 최인호 씨의 인기소설 『상도(商道)』를 흥미 있게 읽은 적이 있다. 당시 베스트셀러로 100만 부 이상 팔렸던 책이다.
이 책에는 약 200년 전 실존했던 주인공 임상옥이 한때 승려가 되려고 수업을 하던 암자를 떠나 다시 상계(商界)로 나올 때 그의 스승인 석숭 스님이 임상옥이 장래 상인으로 대성할 것을 예언하면서 미래에 닥칠 세 번의 위기와 이를 벗어날 수 있는 비책을 알려주는 장면이 있다.
그 예언대로 임상옥은 전무후무한 조선 최고의 무역상으로 거부가 되고 이 과정에서 세 번의 위기를 맞게 되는데 그 내용, 그리고 이를 극복해 가는 과정이 이 소설의 테마이다.
이 예언의 과정에서 석숭 스님이 임상옥에게 하는 말 중 필자가 특히 주목한 것은 다음의 대목이다.

“문제는 네가 첫 번째 위기는 위기임을 알겠으나 두 번째 위기는 위기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위기를 위기로서 직감할 때에는 헤어날 방법이 있는 법이다. 그러나 위기를 위기로서 인식하지 못할 때에는 자신도 모르게 멸문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명심하여라.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풀릴 때가 혹시 무서운, 위험한 고비가 아닐까 생각하여라.”

위기의 본질에 대한 인식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성공체험에 매몰되지 않도록 경계하는 말이다.

우리사회의 문제인식 능력에 문제가 없는가?

주요한 문제의 본질과 배경에 대한 우리사회의 인식능력에 중대한 문제가 생기고 있는 것 같다.
1997년부터 우리가 경험했던 외환위기에 대한 문제인식이 대표적인 예다.
그 위기는 외형적으로 ‘외화유동성 위기’ 즉 달러 부족 형태로 왔다. 그래서 누구나 위기가 도래한 사실을 쉽게 인식할 수 있었고 따라서 위기를 헤쳐 가는 것도 비교적 쉽게 할 수 있었다.
일찍이 1년 만에 IMF위기를 극복하겠다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공언이 그래서 나왔고 IMF의 지원자금의 조기상환과 ‘IMF의 완전극복’ 이라는 우리 경제의 위기극복 선언도 그래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인식은 정말 문제다.
1차 위기의 본질은 결코 유동성 위기가 아니다.
이 위기의 본질과 배경은 한편으로 구조적인 관점과 상황적 관점에서, 또 한편으로는 국내적 시각과 국제적 시각을 종합하는 균형적인 시각을 가지고 접근하여야만 밝혀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 위기는 한편으로는 우리 ‘경제의 구조적 위기’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제사회로부터의 ‘신뢰의 위기'였다. 외화 유동성 부족은 이런 본질적 문제가 초래한 외적 현상이나 결과일 따름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런 인식도 충분하지 못했고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지도 않음으로써 문제의 본질 즉 위기의 진정한 성격과 배경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 채 넘어가 버렸다. 결과적으로 우리 경제는 엄청난 코스트를 치르고도 이 위기로부터 얻어야 할 적절한 교훈을 얻는 데 실패했다.

성공체험에의 매몰을 경계해야

국민 경제의 진로에는 끊임없는 성공과 위기가 교차하게 마련이다.

제대로 된 국민경제라면 상당한 성공에 대한 기억이 없을 수 없고 한편으로는 위기에 대한 경험 또한 없을 수 없다.
문제는 성공 체험에 빠져서 여기에 안주하면 그 성공이 계속 보장될 수 없고 위기가 왔을 때 이로부터 유효한 교훈을 얻지 못하면 새로운 위기를 맞았을 때 넘어지게 마련이다.
‘성공신화로부터의 탈출’과 ‘위기로부터의 유효한 교훈의 습득’이 국민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을 가능하게 해 주는 요인이다.

우리 경제가 맞이한 1997년의 경제위기는 어떻게 보면 우리 경제가 성공신화에 매몰되어 여기서 벗어나지 못해서 직면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 하에 이미 1970년대 중반부터 비약적인 경제 발전의 토대가 서고 소위 ‘한강의 기적’이라는 한국경제의 성공신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 신화의 밑바탕에는 경제발전에 대한 강력한 국가의 의지, 경제 각 부문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 높은 경제 성장 및 기업 확장 목표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끊임없는 추구, 이 목표의 달성을 위한 정부와 기업의 강력한 연계 구조, 경제를 빨리 발전시켜 이를 바탕으로 다른 주요한 국가문제의 대부분을 해결하겠다는 사고 등이 깔려 있다.

필자는 이를 한국경제의 3대 신화 즉 ‘고도성장의 신화’, ‘한국 주식회사의 신화’, ‘경제 제1주의의 신화’라고 부른다.

우리경제 위기구조의 배경과 본질

그러나 사실은 이러한 신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던 바로 그 때, 즉 1970년대 중반부터 1997년 우리 경제 위기의 싹은 비롯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미 1970년대 말부터 이러한 신화가 계속 작동하기 어려운 징후가 상대적으로 가벼운 위기의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경제의 문제를 구조적이고 본질적으로 보는 일부 사람들에 의하여 우리 경제 운영의 틀을 바꾸려는 시도가 몇 차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신화에 젖은 정부의 변하지 않는 고(高)성장 위주 정부주도 경제운영 방식, 이에 대한 뿌리 깊은 국민의 기대 의식, 그리고 팽창 위주 기업경영 관행이 극복되지 못한 채 1997년을 향하여 가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1980년대 말을 기점으로 이루어진 세계경제의 구조적인 변화는 우리경제 운영의 틀을 바꿀 수 있는 타율적인 계기가 되었지만 우리는 이 기회를 살리지 못했고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국제 금융사회로 하여금 우리 경제의 장래에 대해 결정적인 의문을 갖게 만들었고, 1997년 이들은 우리에게 새로이 달러를 빌려주지 않는 것은 물론 이미 빌려줬던 달러까지 갑자기 다투어 거둬들이기 시작했다.
외환위기의 시작이었다.

만약 앞으로 한국경제에 새로운 위기가 온다면 또 다시 유동성 위기의 형태로 오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 전개되고 있는 중국의 경제적 부상과 WTO 가입 이후 국제사회에서의 중국의 역할 증대, 인도와 같은 신흥 경제권의 부상, 미국 등 기존 선진경제의 지속적으로 향상되는 경영과 기술수준과 우리의 그 것과의 격차 등에서 현실적인 문제로 인식되듯이, 우리 경제의 경쟁력의 문제가 그 위기의 본질이 될 것으로 본다.
즉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우리 경제의 어두운 측면에, 즉 우리 경제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경우 경제는 전체적으로 경쟁력을 상실해 감으로써 기업과 금융의 전반적 침하가 이어지고 세계경제와의 통합에 실패하면서 우리 경제가 국제경제사회에서 그 역할과 위치가 축소되고 궁극적으로 도태되어 가는 위기가 될 것이다.

이런 위기는 성격상 서서히 그리고 우리가 분명하게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진행되게 마련이다.
마치 석숭 스님이 말 한 두 번째 위기와 같이 말이다.
이런 성격의 위기야 말로 진정한 의미의 위기다. 그리고 이런 의미의 위기의 가능성에 대한 적절한 인식, 논의나 경계는 아무리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이런 성격의 위기에의 대처방안이 무엇일까?
경제를 비롯한 주요한 국가운영의 틀을 ‘시장의 원리’를 기본으로 철저히 바꾸고 이렇게 하여 이루어지는 경쟁구조를 바탕으로 우리경제의 경쟁력의 원천을 보강하면서 한편으로는 소위 ‘글로벌 스탠더드’를 충실히 수용함으로써 세계경제와의 통합을 성공적으로 이루어 어떤 위기에도 대응할 수 있는 강인성과 유연성을 미리미리 길러가는 것이 유일한 방안이다.
결코 쉬운 과제는 아니나 그렇다고 다른 방안이 있을 수가 없다.

마치는 말

한국경제 위기구조의 본질은 첫째, ‘경쟁력의 위기’이고 둘째, 구조적 위기 즉 ‘시스템의 위기’다. 또 이런 본질에 대한 문제 인식이 제대로 없고 이에 대한 정부차원의 결의도 사회적 합의도 없다는 점, 즉 ‘인식의 위기’가 위기구조의 핵심에 있다.
경기의 일시적 변동에 따라 일희일비하면서 그 때마다 위기론이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하는 우리 사회의 오늘의 현상과 끊임없이 낙관적인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전달하려고 하는 지도자들, 그리고 경제운영방식이 이를 단적으로 나타낸다.

김영삼 대통령 이후 이미 세 번에 걸쳐 민간 대통령이 나와 국정을 이끌고 있다. 이 분들은 하나 같이 정치의 민주화 차원에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인 것은 물론이고 그가 이룩한 경제적 성과나 그가 채택한 경제 운영방식에 대해서도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그런데 이 분들 모두가 박 대통령이 그의 개발시대를 성공으로 이끌었던 경제사상, 그러나 벌써 탈출했어야 하는 한국경제의 3대 신화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의 국가지도자들이 앞으로 있을 수 있는 또 다른 위기의 가능성에 대한 적절하고도 충분한 인식을 가지고 국민들을 적절하게 경계하고 설득하며 우리의 경제 시스템을 시장 원리에 맞게 재정비하고 우리 경제의 세계 경제와의 통합이라는 중요한 과제에 정면으로 도전하면서 이런 방향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뤄 가는 것만이 우리 경제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구조적 위기의 가능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