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 A39면

중소기업연구원 원장 재임이후 : 2005년 12월 16일


인식(認識)의 위기


최 인호 씨의 베스트셀러 ‘상도(商道)’에는 주인공 임 상옥에게 스승 석 숭 스님이 그의 미래에 닥칠 세 번의 위기에 대한 예언과 이를 벗어날 수 있는 비책을 알려주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 중 다음의 대목이 특히 눈길을 끈다.
“문제는 네가 첫 번째 위기는 위기임을 알겠으나 두 번째 위기는 위기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위기를 위기로서 직감할 때에는 헤어날 방법이 있는 법이다. 그러나 위기를 위기로서 인식하지 못할 때에는 자신도 모르게 멸문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명심하여라.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풀릴 때가 혹시 무서운, 위험한 고비가 아닐까 생각하여라.”
위기의 본질에 대한 인식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성공체험에 매몰되지 않도록 경계하는 말이다.

내년 우리경제는 금년 보다는 좀 나아질 것이고 세계경제도 최소한 금년 보다 불리하게 움직일 것 같지는 않다고 보는 것이 국내외의 일반적 전망이다.
내수가 조금 살아나는 것 같고 기업 활동에 대한 전망도 다소 나아진다.
일부 산업 분야, 일부 대기업들의 약진도 두드러진다. 특히 최근 주가가 계속 상향 추세를 보이고 있어 정부는 매우 고무되고 있는 듯 하다.
이렇게 되면 한동안 우리 사회의 화두(話頭)의 하나인 ‘또 다른 한국경제의 위기 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잠잠해지게 마련이다.
증권가에서는 그동안 비관적인 시장전망을 내놨던 사람들이 설 땅을 잃고 심지어 직장에서 퇴출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경제의 이런 낙관적 전망이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의 개선에 바탕을 둔 것일까?
일부 분야의 눈부신 경쟁력의 향상에도 불구하고 농업부문과 소상공인, 자영업자, 대부분의 서비스업을 포괄하는 웅대한 저(低)생산성 부문의 온존(溫存), 이로부터 초래되는 경제 전반의 경쟁력 즉 총 요소생산성의 점진적 저하 추세, 기업의 투자의욕 감퇴, 각 부문의 양극화의 심화 등 우리 경제의 앞날을 매우 어둡게 하는 부정적 요소들이 근본적으로 개선되는 징후는 없다.
더욱이 경쟁력을 보장해 주는 경제시스템에 대한 사회적 합의 기반의 취약, 세계최저의 출산율과 급속한 인구 고령화 추세 등 보다 본질적이고 구조적 문제점에 해결의 실마리가 오는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우리경제의 구조적 문제점은 여전함에도 불구하고 주로 현상적이거나 환경적 요인에 의해 경기가 호전되고 낙관적 전망이 지배하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우리 경제에 축복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증시에서는 모든 사람이 낙관론에 빠질 때 오히려 증시 하락이 시작된다는 속설(俗說)이 있듯이 모두가 낙관론 쪽으로 몰리게 될 때가 위험 신호일 수도 있다.

한국경제는 전망하기가 매우 어려운 경제다.
가변 요소가 너무 많을뿐더러 경제외적 요인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에 경제의 장래가 경제전문가들의 예측 범위 안에 머물지 않는다.
이렇게 전혀 정확할 수 없는 경제의 단기전망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경제가 가지고 있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 중에서 밝은 면을 증진시켜 나가되 어두운 면, 즉 위기적 요소에 주목하면서 이에 정면으로 대응하고 이를 구조적으로 개선해 간다면 우리경제의 장래는 밝을 것이고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실천과정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우리경제는 어두운 미래를 맞을 것이다. 경제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평범한 진리가 장기적으로는 결국 맞아 떨어지는 영역이다.

우리경제에 구조적 변화는 별로 없는데 불과 몇 달 사이에 어쭙잖게 약간 전망이 호전된다고 들뜨기 시작하면서 문제의 본질에 대해서는 ‘인식의 오류(誤謬)’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