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 A39면

중소기업연구원 원장 재임이후 : 2005년 7월 15일


국민건강, 정부가 책임질 수 있나


우리나라는 국민건강을 정부가 책임진다는 전제하에서 공적 보험인 국민건강보험 제도와 이에 바탕을 둔 의료수급체계를 근간으로 국민건강문제에 대처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제도들과 이에 뒷받침 받는 국민건강의 오늘의 모습은 어떤가?

국민건강보험 재정은 통합이 초래한 도덕적 해이로 정상 소득자들의 높은 부담에도 불구하고 일반재정의 지원 없이는 유지해갈 수 없는 구조적 적자상황이 심화되고 있다.
암 등 중증 질환에 걸렸을 때에는 너무 낮은 건강보험 보장수준 때문에 본인 부담이 너무 높은가 하면 일부 질병에 대해서는 과잉진료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
획일적 의료수가제도로 인해 의료서비스의 질적 수준이 저하되고 정말 어렵고 중요한 의학 분야의 전문의는 심각한 부족 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정작 큰 병이 걸렸을 때는 여유 있는 계층부터 외국에 나가서 수술이나 치료를 받는 현실이 점점 일반화되고 있다.
이로 인해 국제경쟁력 있고 잠재력이 큰 우리 의료서비스가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당하고 있다.

이 모든 문제는 국민의 건강문제를 정부가 만든 하나의 틀에 넣어 정부 책임 하에 해결하려는 정책방향이 가져 온 필연적 결과다.
노무현 대통령은 후보시절 유세 중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지 못하는 정부는 정부가 아니다”라고 말함으로써 집권하면 채택할 국민의료와 건강보험에 관한 정책과 제도가 나아갈 방향을 예고한 바 있다.
그러나 결과는 기술한 바와 같고 심지어 장기적으로 제도의 존속이 가능할지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에 이르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문제의 심각성을 느꼈는지 최근 정부는 의료서비스의 산업화를 추구하고 병원의 영리법인화의 가능성을 검토하는 등 의료서비스의 공공성과 시장성의 조화를 시도하고 의료수급체계를 정상화하려는 일련의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나 이러한 논의의 시작을 환영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또 얼마나 많은 국론의 분열을 경험하게 될지 걱정이 앞선다.
이렇게 쟁점이 많은 국민건강과 관련된 본질적 이슈들이 합리적이고 일관성 있는 방향으로 해결의 방향을 찾아가기 위해선 우리 사회가 다음에 제기하는 몇 가지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편견 없이 대답을 구하고 이에 대해 최소한의 국민적 합의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료시장에서 의료서비스를 획득해 스스로 자신의 건강문제에 대처할 의사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건강문제까지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하나? 또 그럴 능력이 과연 정부에게 있나?
전 국민의 건강문제를 정부가 모두 책임진다는 발상 때문에 정부의 집중적인 관심의 대상이 돼야 할 사람들의 건강문제는 오히려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지 않는지?
우리 국민건강보험 제도가 자기책임과 위험분산이라는 보험 본연의 기능에서 너무 멀어진 모습이 돼 있고 지나친 사회보험적 성격과 소득재분배 기능에만 치우친 제도는 아닌지?
그래서 의료서비스에 있어서 보험과 보호의 기능 즉 시장과 정부의 역할의 구분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건강보험에 있어서 정부의 기능과 시장의 기능을 보다 조화롭게 재설정할 여지는 없는지?
즉 국민건강보험과 민간의료보험의 기능과 역할을 조화롭게 재설정하지 않고도 의료수급체계를 의료소비자 중심으로 효율화하고 국민건강 보험재정의 파탄을 막는 것이 가능할지?

정부의 의지가 선하다고 해서 그것이 유효한 정책으로 성립되고 의도한대로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겠다는 대통령과 정부의 의지는 높이 살만하다. 그러나 이제까지 이 지구상에서 국민의 건강을 전적으로 책임진 정부가 존재한 적이 없다.
정부의 기능과 역할의 한계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문제해결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