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MIST 5월 24일자, 788호 10면

중소기업연구원 원장 재임이후 : 2005년 5월 18일


기대 수준부터 낮춰라


올들어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소비자기대지수, 기업경기조사지수(BSI) 등 각종 심리지표들이 상승세를 보이고 실물활동이나 경기선행지수도 부분적으로 개선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유가의 지속, 환율 전망 등 불안 요인에다 소비의 완전한 회복, 설비투자의 증가 전망이 그렇게 밝지 않아 대부분의 연구기관이나 책임 있는 관계부처도 올 경제를 낙관하기에는 이르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최근 노무현 대통령은 터키 방문 시 “물가든 외환이든 경제성장률이든 실업률이든 모든 측면에서 한국 경제는 완전히 회복됐다”고 선언했다.
경제의 전망이나 운영 방향에 대한 강한 자신감의 피력이다.
경제에 대한 대통령의 자신감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대통령이 이런 자신감을 가졌다고 지금까지 무수히 해 온 것처럼 단기적으로는 경기회복, 장기적으로는 우리 경제의 밝은 장래에 대한 국민의 높은 기대 수준을 끊임없이 부추기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깊이 생각할 문제다.

지난해 한국 경제가 실현한 4.6% 수준의 성장은 대통령의 공언에는 못 미치지만 결코 낮은 것이 아니다. 이 정도의 성장 수준도 대외 균형의 희생, 대내적으로는 다양한 부문 간의 양극(兩極)화 심화라는 구조적 문제점 위에서 얻어진 것이라고 본다.
이런 구조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는 제쳐놓더라도 지난해의 외형적 경제 성과에도 국민이 만족하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는 정부의 거듭된 낙관적인 전망과 호언에 비해 부진한 실적, 그리고 이에서 오는 상대적인 실망감 때문일 것이다.

참여정부가 출범당시 안았던 매우 어려운 국내외 여건과 정책 환경에는 아직도 큰 변화가 없다. 북핵 문제, 유가 급등,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경제회복 지연 등 대외 여건이 그렇고, 벤처 정책 등 신산업정책의 실패, 가계 부채의 누적, 부동산 가격 상승 요인의 잠복, 잠재된 사회복지 지출 요인 증대, 재정 부담 능력의 한계 등 김대중 정부로부터의 유산을 비롯한 대내 여건의 어려움도 여전하다.
위기 극복의 어려운 현실과 명분 때문에 다양한 국민의 의사를 한 곳으로 결집해 국민적 합의를 이루고 정부의 개혁정책에 대한 지지를 얻기가 용이했던 김대중 정권에 주어졌던 유리한 정책 환경은 더 이상 이 정부의 것이 아니다.

현 정부 경제정책의 진정한 공과(功過)는 훨씬 훗날 논할 일이다.
다만 이 시점에서 굳이 이 정부의 경제정책에 문제가 있다면 실현된 경제성과의 부진 자체가 아니라 이런 불리한 대내외 여건, 정책 환경에 대한 적절하지 못한 인식과 경제의 구조적 개선을 통한 경쟁력의 원천적인 향상보다 단기적인 경기회복에 집착하면서 이를 정부의 경제적 성과와 결부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그래서 실현될 수 없는 낙관적인 경제 전망을 끊임없이 제시함으로써 국민의 기대치를 높이면서도 실적은 이에 못 미쳐 국민적 신뢰를 상실해 온 점이라고 본다.
김대중 정부가 밟은 실패를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경제의 진정한 문제는 취약한 경쟁력 구조에 있다. 이 구조에 획기적인 변화를 주는 데 경제정책의 초점을 맞춰야한다. 국민의 의식과 역량을 이 방향으로 결집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경제를 운영해야 할 것인지가 경제정책의 주관심사가 돼야 한다. 이 과정에서는 국민의 적절한 수준의 위기의식도 필요하다.
단기적 경제성과에 대한 정부의 집착과 경제 실적에 대한 국민의 높은 기대수준과는 결코 양립될 수 없는 방향이다.

제대로 경제를 운영하려면 먼저 경제에 대한 국민의 기대수준을 낮춰야 한다. 이것이 정치적으로도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