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 A11면

중소기업연구원 원장 재임이후 : 2005년 1월 14일


사람 낭비하는 사회


금번 개각의 후유증이 크다. 당초 교육부총리 개인의 도덕성 문제로부터 청와대의 인사 검증시스템에 대한 비판, 개편론으로 비화되더니 급기야 총리와 대통령 비서실장의 책임론까지 제기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국가적 낭비를 경험하고 있고 연초 벽두부터 정부 권위의 실추도 만만찮다.

이 모두 문제가 아닐 수 없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보다 중요한 문제는 이 과정에서 드러난 사람을 아끼지 않는, 인적 자원의 가치가 경시되는 우리 사회의 풍조다. 그리고 이렇게 비싼 코스트를 치르면서도 우리 사회는 이 과정의 배후에 있는 이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논의나 우려가 거의 없다는 점이 진정 문제다.

그간의 한국 특유의 빈번한 정치적, 사회적 격변 과정은 언제나 많은 유능한 인재들의 강제 퇴장을 동반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의 낭비 과정을 무수히 보면서도 이를 별로 아쉬워하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다.
이번에만 하더라도 교육부총리 당사자의 도덕성에 대한 평가나 그 개인의 명예와는 별개로 교육정책의 적임자라고 대통령과 총리가 생각했고 누가 봐도 우리 사회가 배출할 수 있었던 최고 수준의 인재 중 한 사람을 공직 사회가 영원히 잃게 될 수 있는 결과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논의는 전연 없었다.

보다 안타까운 사실은 개각 당시 장수(長壽) 장관의 교체 배경에 대한 설명에서 드러난 대통령의 인적자원에 대한 인식이다.
"2년쯤 일하면 아이디어도 다 써먹을 만큼 써먹고 열정도 조금 식고, 경우에 따라선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
국가지도자의 이런 사고, 이런 표현이 가져 올 부정적 영향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클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장ㆍ차관 2년 정도하면 지적(知的)으로나 나라에 대한 헌신에 있어서 밑천이 드러날 정도밖에 안 되는 수준의 사람밖에 없고 당사자들에게도 그이상은 기대하지도 말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 셈이다.

현대 경영학의 대부 피터 드러커는 나이 많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생산성에 관해 참으로 고무적인 말을 하고 이를 행동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는 "생각해보니 60세부터 90세까지 30년간이 나의 전성기다"라고 이야기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96세인 그는 최근 수년간에도 "Next Society"를 비롯하여 수많은 저술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고 이 저작들이 과거 그의 수많은 저작들 보다 더 높은 세계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을 보면 그의 이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인간의 능력이 나이를 초월하여 점점 더 빛을 발하는 경우는 드러커 이외에도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의 사람은 드러커가 이야기하는 전성기 이전에 생산적인 활동에서 완전히 퇴출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과 수명의 획기적인 연장으로 급속한 고령화가 진전되고 있고 이런 추세가 바뀌거나 늦춰질 가능성은 없다.
앞으로 우리 경제사회의 활력을 좌우할 인적자원의 공급원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나이 든 사람의 지식과 경험을 사장(死藏)하지 않고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여성인력의 경제활동 참가를 촉진하는 것과 더불어 이 과제에 대한 유일한 답이 될 것이다.

이 시대의 특징의 하나인 "지식사회"란 인적자원의 가치가 어떤 경제 요소의 가치보다 더 크고 생산적인 것이라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한국 경제의 가장 본질적 문제인 경쟁력 문제에 대한 해답도 인적자원의 양성, 교류, 활용에 있어서 우리가 국제적인 우위를 확보하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사람을 경시하고 낭비하면서도 그 것이 가능할까?

인적자원의 가치에 대한 이해를 다시 하고 사람의 축적된 지혜와 경륜을 아끼고 활용하는 방향으로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풍토와 지도자들의 인식에 변화가 와야 한다. 이 것이 우리 경제의 앞날을 밝게 하는 중요한 전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