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 A11면

중소기업연구원 원장 재임이후 : 2004년 12월 13일


경제, 하지말 것을 먼저 고려해야 (원제: 경제양극화와 자원배분 구조)


우리 경제가 당면하고 있는 본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의 하나는 여러 부문에서 동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경제적 성과의 양극화(兩極化) 현상이다.
이 현상을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볼 이유는 없다. 어쩌면 경제의 발전, 세계화, 기술진보의 과정 등 경제 환경의 급격한 변화는 우리경제에 근본적인 충격이 될 수밖에 없고 다양한 경제 주체들의 이런 충격에의 대응 능력, 그 결과 초래되는 경제적 성과의 격차는 필연적으로 양극화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또 이 과정이 어쩌면 구조조정의 중요한 한 측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경제의 양극화의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우선 그 진행속도가 너무 빠르고 그 확산의 범위가 너무 넓다. 또한 양극화 현상 자체는 불가피하다고 하더라도 선도부문의 성과가 낙후부문으로 원활하게 파급되는 과정을 걸어야 할 텐데 전혀 그러지 못하고 그 괴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수출의 증대가 내수의 증대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가 깨어지고 결과적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경제양극화의 원인을 규명하고 이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다양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수출과 내수의 선순환구조 구축, 산업과 기업의 혁신과 구조조정, ‘성장촉진형 재분배정책’ 등이 그것이다. 정부가 산업정책의 주 파트너를 중소기업으로 하고 혁신과 구조조정을 통해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경제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두겠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논의되는 방안들이 일견 타당성이 있고 일정한 효과가 기대되기도 하지만 필자는 우리 경제의 양극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이 문제의 배경이나 원인에 대해 보다 깊이 있는 구조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중소기업 문제를 중심으로 생각해 본다. 현재 우리 정부는 247개의 재정지원 사업, 17개의 비재정 지원제도, 47종의 조세지원제도를 중소기업을 위해 운영하고 있다. 금년에만도 8조 1천억원의 재정이 중소기업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로, 인력, 자금, 기술, 대기업과의 협력 등 중소기업이 당면한 각 분야의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물론 이런 정책수단들의 효율성이 문제되겠지만 그 보다는 다른 한 쪽에 이런 정책적 노력을 무력화 시키거나 상쇄하는 본질적이고 구조적 요소가 우리 경제에 있지 않은지 생각해봐야 한다. 있다면 그것은 우리 경제사회에 존재하는, 상대적으로 중소기업에 불리한 거대한 자원배분구조일 것이다.

예컨대 외환위기 극복이후 경기의 인위적인 부양을 위해 시장의 수급상황과 괴리된 외환 및 환율정책을 전 정부 때부터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다. 그로부터 초래된 우리 환율의 저평가 현상은 수년간 수출산업과 내수산업 간 자원배분구조를 수출산업에 엄청나게 유리하도록 왜곡시키고 가계의 실질소득을 떨어뜨려 내수기반을 약화시켜왔다. 수출과 내수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수출과 내수의 선순환구조가 깨뜨려진 주요한 배경이다. 이 내수산업의 대부분은 물론 중소기업이다.

이렇게 형성된 불리한 자원배분구조는 어떤 중소기업지원 수단으로도 만회될 수 없다. 이런 지원수단은 또 다른 구조적 왜곡을 가져온다. 오늘날 중소기업문제의 본질이 여기에 있다. 이런 현상은 비단 중소기업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교육정책, 지역균형개발 정책, 고용정책, 여성보호정책 등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분야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이들 경우 피해자는 대부분 그 정책이 보호하려고 했던 대상, 즉 경제적 취약계층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장의 원리를 바탕으로 물 흐르는 듯한 경제운용 이상의 합리적인 자원배분구조를 가져오는 길은 없다. 이런 구조 하에서만 경제 각 부문의 균형이 달성되고 경제의 효율성이 극대화된다. 경제양극화 현상의 근원적 해결방향도 여기서 찾아야 한다.
‘무엇을 할 것인지’를 생각하기에 앞서 ‘무엇을 하지 말 것인지’를 깊이 생각하는 정부의 반성위에서만 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