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신리더십아카데미 강연

중소기업연구원 원장 재임이후 : 2004년 11월 04일


시장경제적 관점에서 보는 한국경제의 위기구조


1. 한국경제 위기인가?

가. 경제 위기론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

- 오늘의 경제 상황이 위기적 상황인지 여부를 둘러싸고 우리 사회에는 요즈음 매우 심각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음. 대체로 정부는 그러게 마련이지만 현 정부 역시 경제위기론에 대해 매우 부정적임. 특히 노 대통령의 위기론에 대한 반응이 그러함.

- 노 대통령은 지난 5월 27일 연세대학에서 한 강연이나 이어서 6월 5일 17대 국회 개원식에서 한 연설 등에서 최근의 경제위기론을 강하게 부정하고 이런 논의 자체를 비판하면서 금년도에는 최소한 5% 수준, 내년 이후 임기 동안 매년 6% 수준의 성장이 가능하다는 낙관론을 펴면서 자신이 대통령으로 있는 한 한국경제는 걱정할 것이 없다는 강한 자신감을 피력한 바 있음. 최근 9월 5일 MBC와의 대담에서도 금년도의 경제성장률이 5.2로 예상되어 OECD 국가 중 제일 높으므로 전혀 문제가 없으며 경기부양책을 쓸 필요가 없다고 말함.

- 문제는 현실 경제의 세계에 있어서 대통령이나 정부의 자신감이나 어떤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기업들과 소비자들로부터 오늘의 우리 경제를 낙관하고 좀 더 적극적으로 투자 활동을 하거나 좀 더 적극적으로 묶어 왔던 주머니를 풀어 소비를 확대하려는 기도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는 데 있음.

- 뿐만 아니라 국내외 경제예측 기관들이 다투어 금년도 우리 경제의 전망을 하향 조정하고 있고 내년도도 3%대의 매우 어두운 전망이 국내외에서 나오는 것을 보면 이들의 생각과 대통령이 지도하는 정부의 생각 사이에는 큰 괴리가 있는 것이 틀림없고 오늘의 한국경제의 문제가 노 대통령의 자신감처럼 그렇게 간단한 것은 아닌 것이 확실함.

나. 경제 위기론의 성격

- 그런데 문제는 경제의 어려움 내지 위기를 논하는 데 있어서 위기의 본질적 성격을 어떻게 보고 접근하느냐가 매우 중요함. 구체적으로는 오늘의 경제현상이 기대한 것만큼 또는 계획한 것만큼 성과를 거두고 있느냐 여부를 기준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이런 단기적인 성과에 관계없이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의 본질을 규명하고 오늘의 경제상황을 이런 구조적 문제와 연결하여 분석하면서 우리 경제의 위기적 측면을 논하느냐에 따라 위기론의 성격은 전혀 달라질 것임.

- 이것은 위기론을 논함에 있어서 주로 경기 순환적 관점에서 볼 것이냐 아니면 구조적 시각에서 볼 것이냐의 문제로 귀착됨. 이런 관점의 문제가 먼저 정립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위기논쟁은 전연 무의미하다고 본다.

- 노 대통령은 앞의 강연과 연설에서 위기론을 부정하면서 동시에 단기적으로 경제의 성과를 높이기 위해 경기부양 목적의 정책수단을 동원하지 않겠다는 점도 천명한 바 있음. 과거 정부에 있었던 경기부양 노력이 가져온 문제점들을 낱낱이 지적한 것을 보면 그는 주로 경기 순환적인 관점에서 대두되는 위기론을 경계하고 있는 듯 함.

- 일단은 옳은 문제 인식이라고 생각되나 두 가지 문제점이 있음.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8월 30일 발표한 정부 여당의 ‘경제 활성화대책’에서 보는 바와 같이 최근의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문제제기 방향이나 정책방향은 두 어 달 전 대통령의 공언과는 달리 경기의 부양을 위해서는 어떤 정책도 불사하겠다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점임. 다른 하나는 대통령의 경제위기론의 부정이나 비판이 우리 경제위기의 본질적, 구조적 측면까지 과소평가하거나 부정하는 경향이 있다는 우려임.

다. 한국경제의 위기구조의 본질

- 경기침체와 성장률의 저하가 위기의 본질은 아니며 자본주의 경제는 속성상 어느 경제라도 경기의 순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 결과로서 드러난 경제의 성적만을 가지고 위기적 상황이라 보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것은 사실임.

- 우리경제의 침체가 금년에 끝나지 않고 일본이 경험한 것과 같은 장기 침체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고 이런 상황을 위기의 본질로 인식하는 경향도 있음. 그러나 일본경제의 문제는 경기순환의 문제가 아니고 일본경제의 구조적 문제라는 데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고 봄. 하기야 당사자인 일본 스스로도 소위 ‘잃어버린 10년’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지나간 뒤에야 이에 대한 인식을 하기 시작했다고 보아야 하고 그 인식이 철저한지 조차도 의문임.

- 구조적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인식의 결여가 일본을 ‘잃어버린 10년’에 빠뜨린 근본적인 원인이며, 이 문제에 대한 구조적 대응을 하지 못하는 경우 일본은 ‘잃어버릴 10년’에 대한 우려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봄.

- 일본을 ‘잃어버린 10년’에 빠뜨린 근본원인이 된 일본의 구조적 문제는 흔히 ‘55년 체제’라고 불리는 일본 특유의 경제ㆍ사회구조와 국가운영 체제임. 2차 대전을 거치고 맥아더 군정치하에서 개혁과정을 거치고 형성된 국가 운영 시스템으로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고성장 경제를 이룩하면서 전후 경제대국으로 발전한 일본의 성공신화의 배경에 있는 경제 시스템 바로 그 것임.

- 정치적으로는 자민당 장기 집권구조이며 경제적으로는 정(政)ㆍ재(財)ㆍ관(官)의 공고한 철의 3각 구조, 흔히 일본주식회사로 불리는 정부 지도하의 선단식 기업경영 체제, 기업 내 종신고용제 등 독특한 노사관계 등이 그 핵심 요소를 이루고 있음. 이 체제는 관민통합(협조)형의 ‘변형된 시장경제체제’로 나타났고 그래서 일부 경제학자들에 의해서는 시장경제적 속성이 부정되기에 이르렀음. 또 수요자 또는 소비자 보다는 생산지 내지 공급자 중심의 경제구조로서의 특징이 고착되어 왔음.

- 시장 기능의 위축, 정부와 시장기능의 미분화로 특징 지워지는 이런 식의 일본경제는 필연적으로 정부의 고성장 정책과 기업의 과도한 팽창적 경영 패턴을 유발했고 금융이 이를 뒷받침했음. 이 과정에서 금융, 부동산. 시설, 고용 등에 거대한 거품이 끼게 되었던 것임.

- 일본의 장기 불황은 이런 거품들이 붕괴되면서 시작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보다 더 본질적이고 구조적인 일본경제의 문제는 바로 일본의 성공을 가져다 준 이런 유형의 일본 특유의 경제구조가 80년대 말부터 근본적으로 변화되는 세계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 하에서 더 이상 유효한 시스템으로 작동될 수 없었다는데서 찾아야 할 것임.

- 최근 일본경제의 재생에 대한 기대가 팽배해 있으나 일본경제를 주로 구조적 측면에서 관찰한다면 속단은 빠르며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임. 우리는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일본경제로부터 유효한 교훈을 얻어야 할 것임.

- 어떤 국민경제나 제대로 된 경제라면 성공의 신화와 위기의 경험을 동시에 갖게 마련임. 그러나 지속적인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은 과거의 ‘성공신화로부터의 탈출’과 ‘위기로부터의 유효한 교훈의 습득’임.

- 먼저 과거 한국 경제의 성공을 가져왔던 한국경제의 3대 성공신화 즉 ‘고도성장의 신화’, ‘한국주식회사의 신화’, ‘경제제일주의의 신화’는 더 이상 유효하지 못함. ‘성공신화로부터의 탈출’ 즉 기존의 ‘경제운영 틀’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 없이는 변화하는 세계경제 여건 하에서 한국이 앞으로 생존ㆍ발전할 수 없다고 봄.

- IMF경제위기는 한국이 기존의 경제운영의 구조적 문제점을 반성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어떤 의미에서 ‘위장된 축복(disguised blessing)’이었음. IMF를 겪고도 우리 경제의 위기구조에 본질적인 변화가 없는 이유는 우리 사회와 정부가 IMF위기의 원인과 배경이 되는 우리 경제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에 대한 균형 있고 편견 없는 분석을 시도하지 않은 채 IMF체제를 극복하려고 한 데 있음.

- 즉 이 위기의 배경과 본질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이 결여됨으로써 한국은 이로부터 적절한 교훈을 얻는데 실패했고 오늘날 끊임없는 위기론을 배태하는 배경이 되고 있음.

- 외부에 나타나는 우리 경제의 위기적 모습은 끝없는 내수의 추락 즉 투자수요와 소비심리의 동결로 나타나고 있음. 그러나 이 현상의 배후에는 보다 본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가 자리 잡고 있음. 그것은 바로 경제의 불확실성, 장래 전망의 불투명성임. 기업의 투자심리를 반전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경제의 흐름을 선순환으로 전환하여 경제위기의 재생산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 불확실성, 불투명성의 원인이 되는 구조적 문제의 본질에 대한 내과적 진단과 처방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함. 그런데도 정부를 포함하여 우리 사회의 접근은 주로 외과적 처방과 조치에 주력하고 있는 것 같음.

- 이런 구조적 문제를 필자는 기본적으로 우리경제의 경쟁력의 문제로 인식함. 구체적으로 말하면 첫째는 우리 경제의 취약한 국제경쟁력 구조이며, 다음은 우리의 경쟁력에 대한 경제주체들의 확신의 결여이고, 마지막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경쟁력을 보장해 주는 경제시스템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선택이 정부에게도 없고 국민의 합의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임.

- 이러한 상황 하에서 경제운영의 원리가 투명하게 자리 잡을 수 없음. 또 경제와 비경제부문 등 주요한 국정운영의 원리에 있어서 일관성을 찾을 수 없는 결과가 초래되는 보다 중요한 문제가 제기됨.

- 이의 연장선상에서 눈을 바깥으로 돌려 보면 우리는 피할 수 없는 대외 의존적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세계경제흐름에 대한 인식이 국가 전체로 부족하고 세계경제의 흐름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국민의식과 경제운용 방향이 뿌리 박혀 있다고 봄.

- 요약컨대 ‘급변하는 세계경제 환경 속에서 이 흐름과 조화되면서 우리의 경쟁력을 보장해주는 경제시스템에 대한 확신과 선택 그리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결여’가 우리경제의 위기구조의 본질이라고 생각함.

- 더욱이 경제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는 경제외적 측면(안보, 남북문제, 대미 공조관계의 변화 방향, 정치의 불안정 등)이 더해져서 위기의 구조적 성격이 보다 심각해지고 있다고 봄. 이 위기의 구조적 성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위기라고 봄.

- 어떤 의미에서 한국경제의 위기는 ‘위기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위기’, ‘선택과 결단의 위기’로 규정될 수 있음.

2. 경제위기구조의 극복방향

- ‘선택과 결단의 위기’라고 할 수 있는 우리 경제 위기구조의 극복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두 가지 있다고 봄. 그 첫째는 문제의 본질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사회적으로 확립되는 것이고 둘째는 시장경제하에서의 정부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성찰이라고 생각함.

가. 경쟁력에 대한 인식과 경제시스템에 대한 선택

- WEF, IMD등 주요 국제 경쟁력 평가기관의 평가 결과에 의하면 한국경제는 IMF 위기 이후 급격히 경쟁력이 하락되는 모습을 보이다가 2000년을 고비로 이전 수준으로 다소 회복하였음.

- 그러나 다시 2002년 이후 회복세가 둔화되고 있으며 2004년 5월 IMD가 한국의 국가경쟁력을 조사대상 60개국 중 35위로 평가한데 이어 세계경제포럼(WEF)도 한국의 국가경쟁력을 109개국 중 29위로 작년보다 11단계나 낮춰 평가해 논란을 일으키고 있음. 이런 지표나 수치에 지나치게 의미를 둘 필요는 없지만 우리 경제의 국제경쟁력에 적신호가 켜져 있고 경쟁력이 총체적으로 침하되고 있다는 사실은 새삼 지표를 통한 검증을 필요로 하는 일이 아닐 것임. 우리 경제는 그간 IMF경제위기를 경험하고 각 분야의 구조개선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경제의 외형적 성과에 비해 극히 취약한 경쟁력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는 이야기임.

-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은 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어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더불어 완성되는 새로운 세계경제질서(Boardless Economy, Globalization, Knowledge- based Economy)속에서 한국이 어떻게 경쟁력을 유지 발전시키면서 생존해 갈 것인가, 그러기 위해서 어떤 경제시스템을 채택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계속 부딪혀 왔으나 아직도 분명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봄.

- WTO의 뉴라운드 출범, 중국경제의 WTO 가입, 지역간 자유무역협정 체결의 증대 현상 등 국제환경의 변화는 우리 경제가 생존하고 계속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우리 경제의 경쟁력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를 해야 하는 단계에 와 있음을 보여 주고 있음.

- 경제의 최대 이슈는 경쟁력이며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갖지 못하면 어떤 논의도 대안도 의미가 없다. 그런데 이 경쟁력은 그것을 유지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경제시스템에 대한 분명한 선택이 없이는 절대로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어떤 시스템이 이를 보장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분석과 이해가 필요함.

- 시장경제 체제는 경쟁적 구조를 가능하게 하여 경쟁력의 문제에 대해 해답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시스템임은 동서고금의 역사와 오늘날 세계경제 속에서 각국이 이룩하는 경제적 성취를 보면서 재확인함.

나. 시장경제에 대한 실천적 이해

- 시장경제 사상이나 이론이 아담 스미스 이후 유럽과 미국에서 생성, 발전돼 온 것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큰 오류이며 경제의 자연스러운 흐름의 본질을 간파한 이론은 지금부터 2000년 전 이미 동양에 있었음.

- BC 90년경 중국 한(漢)나라 무제 때 사마천이 완성한 ‘사기(史記)’중 열전(列傳)69권 ‘화식열전(貨殖列傳)’에 나오는 다음의 구절은 시장경제의 본질에 대한 최고의 설명으로서 아담스미스의 『국부론(1776년)』 보다 1870여 년 전에 이미 시장경제의 원리를 갈파하고 있음.

농민들이 곡식을 생산하고, 어부나 사냥꾼이 고기를 생산하고, 기술자들이 물건을 만들고, 상인들이 이를 유통시킨다. 이러한 일들이 어찌 나라의 정령(政令)이나 교화나 징발이나 혹은 사전에 한 약속에 의해서 행해지는 것들이겠는가? 사람은 각자 자기자신의 능력에 맞추어 그 힘을 다해서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것이다. 때문에 물건 값이 싼 것 은 장차 비싸질 징조이며, 값이 비싼 것은 장차 싸질 징조이다. 사람 마다 자신의 일에 힘쓰고 각자의 일을 즐겁게 하면, 이는 마치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과 같아 물자의 흐름도 밤낮 멈추는 때가 없다.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몰려들고 억지로 구하지 않아도 백성들은 물품을 만들어 낸다. 이 어찌 도(道)에 부합되는 것이 아니며, 자연스러움의 증명이 아니겠는가?


- 이렇게 시장경제는 자율을 기본원리로 물 흐르듯 유연한 제도가 그 본질임.

-그러나 반드시 이 시스템이 시행하기 쉬운 제도는 아니며 더욱이 정부가 말로 한다고 해서 되는 제도가 아님. 시장경제를 하기위해서는 그 원리에 대한 이해에 더하여 경쟁력을 유지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경제시스템에 대한 사회의 지도자들의 확신과 일관성 있는 선택, 그리고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가능한 것임.

- 시장경제를 한다면 우선 경쟁원리를 받아드리는 것이 전제돼야 함. 이것은 바로 신약성서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의 비유’에서 적절하게 설명되는 ‘유인과 징벌(incentive & penalty)의 원칙이 확립된다는 것을 의미함.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알고 있는 이 유명한 ‘달란트의 비유’의 경제적 의미와 우리경제에 주는 교훈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음.(별첨참조)

- 수요자 중심의 사고, 완전한 국제화(개찰구 없는 개방화)가 경제의 모든 부문에 정착되는 것도 빼 놓을 수 없는 시장경제의 기본적 요소임.

- 그러기 위해서는 시장에 대한 정부의 역할을 분명하게 설정하여 ‘시장의 것은 시장이, 정부의 것은 정부가’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함.

다. 세계화 현상(Globalization)에 대한 인식

- 소위 ‘세계화(Globalization)’의 개념이나 의미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가 있으나 “생산물은 물론 생산요소까지 자유로운 국경 간 이동 현상이 심화되는 가운데 이를 바탕으로 기업경영이 국경을 초월하여 이루어지는 현상과 이를 향하여 국가의 모든 제도와 정책이 변해가는 과정”으로 정의할 때 그 실체가 분명해짐. 즉 세계화의 경제적, 기업적 의미에 주목해야 그 본질에 접근할 수 있음.

- 이 세계화(Globalization)현상은 국가와 기업, 개인 등 당사자의 호ㆍ불호, 선택 여부와 관계없이 진행되는 세계적 추세이며 이에 통용되는 새로운 게임의 법칙 즉 글로벌 자본, 자유시장규범 및 제도, 의식과 행태 등이 정립되고 있음.

- 세계화에 따르는 문제는 이러한 추세와 게임의 법칙을 객관적인 사실로 인정하고 이에 따르는 길을 걸어 세계경제에서 성공을 거두려는 사람들과 이를 거부하고 기존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태도를 갖고 결국 세계경제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반목이라고 볼 수 있음.

- 세계화의 논리는 그 무차별성과 무자비함 때문에 이를 거부하는 사람들로부터 강한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음. 그러나 이에 대응하는 우리나라의 최선의 방책은 우선 이 길의 논리와 작동원리를 이해하여 이 길을 택함으로 오는 혜택을 최대한으로 늘리고 그 고통을 최소화하는 길이라고 봄.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이 추세로부터 국가적 이익을 가장 많이 향유할 수 있는 나라 중의 하나이기 때문임.

- 이러한 세계화 현상에 대한 국가 사회적 인식이 적절하지 못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점은 우리 경제의 가장 중요한 구조적 문제의 하나임. 나아가 우리나라가 당면하고 있는 국정혼란과 사회적 갈등의 본질 역시 여기서부터 초래되는 선택의 기로에서 맞는 갈등과 반목의 관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임.

- 우리나라는 잘살기를 원하면서도 잘 살기 위해서 힘들고 어렵더라도 세계가 보편적으로 추구하고 인정하는 ‘세계 식으로 살 것’에 대한 국가적 선택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있음.

북한과 같이 ‘우리 식대로’ 살려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잘 살기를 바라는 모순적인 국민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 - 따라서 쟁점이 분명하지 않은 기존의 보수와 진보의 논쟁보다 ‘세계식’이냐 ‘우리식’이냐를 중심으로 사회의 논쟁의 쟁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봄.

라. 경제체제의 유지를 위한 노력

- 중앙일보 여론조사(2003. 4. 28)에서 국민의 절반가량이 ‘기업을 좋지 않게 생각 한다’고 응답했고, 특히 대기업과 재벌에 대해서는 57.3%가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음. 대한 상의와 현대경제연구원의 공동조사(2003. 12) 중 기업 활동의 우선순위에 대한 설문에서 이윤창출(53.5%), 부의 사회 환원(46.5%)으로 조사되는 등 기업의 본질에 대한 인식이 매우 적절하지 못함.

- 다국적 여론조사 기관인 테일러 넬슨 소프레(TNS)가 세계 33개국 정규직 근로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2002년 11월)한 결과에 의하면 직장에 애착을 갖고 있는 한국인은 10명중 3명에 불과해 조사대상 중 최하위(33위)를 보인 바 있음.

- 이와 같이 우리 사회에는 기업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불충분하고 반 기업, 반 시장 정서도 심각한 수위에 달해 있으며 건전한 직업관도 확립되지 못하고 있는 바 이는 자유시장경제의 근본을 흔드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음. 우리 사회의 지도층은 이에 대한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시장경제체제 유지를 위한 노력과 비용을 지불할 각오를 해야 될 것임. 특히 학생, 젊은 층을 대상으로 체계적인 경제교육이 필요하다고 봄.

- 자유시장경제체제가 가장 발달된 나라들, 특히 미국은 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으며, 국민들의 경제의식을 바로 잡기 위해 유치원부터 전 국민을 대상으로 각종 경제교육프로그램 등을 운용하고 있는바 좋은 참고가 될 것임.

- 사회의 상층부가 솔선수범하는 Noblesse Oblige는 우리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이 항상 고려해야 할 규범적 태도이자 전략이라고 봄. 건전한 경제ㆍ사회체제의 유지 발전을 위한 자발적인 비용부담 의식과 자발적인 적정 수준의 ‘부의 사회 환원’은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유지하고 노사의 대립, 빈부의 대립, 세대의 대립 관계를 근본적으로 극복하여 우리가 추구하는 자유시장경제체제의 존립과 발전을 담보해주는 중요한 밑바탕이 될 것이기 때문임.

마. 시장경제하에서의 적정한 정부의 역할

시장경제를 한다는 것은 결국 시장에 대한 정부의 역할을 어떻게 설정할 것이냐의 문제로 귀결됨. 우리나라가 시장경제의 원리에 충실한 경제운영을 하려고 한다면 다음의 몇 가지 기본적인 사항에 대한 재고(再考)부터 이루어져야 할 것임.

□ 경제운용의 기본 틀

- 시장경제원리를 추구하는 한 높은 경제성장률 등 거시지표를 미리 목표로 설정하고 이를 시장개입적인 수단을 통해서라도 달성하려고 하는 종전의 경제운영의 기본 틀에 대한 근본적인 수정이 필요함.

- 따라서 현재의 다양한 형태의 산업정책의 유효성에 대한 면밀한 재검토가 시행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산업정책 위주의 경제정책을 경쟁정책 위주의 경제정책으로 전환하여야 함.

□ 시장의 것은 시장이, 정부의 것은 정부가

- 구체적으로 시장경제를 실현하는 과정은 시장에 대하여 정부가 해야 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가리는 것이며, 시장에서 해결될 수 있는 일은 시장에 맡기고 시장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영역을 찾아서 해결하는 노력을 하는 것을 의미함.

- 또 시장에서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의 문제는 자기 책임 하에 시장에서 시장논리에 의해 해결하도록 하고, 이렇게 할 수 없는 사람의 문제해결에 정부의 역할이 모아져야 함.

- 비록 정부의 역할이 필요한 경우에도 시스템 내에서 경쟁개념, 민간의 활력 도입 가능성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필요함.

□ 정부의 기능, 역할 및 조직의 orientation

- 우리 정부의 조직은 수요자보다는 공급자 위주의 오리엔테이션을 가지고 있고, 기능별 역할보다는 산업별, 품목별 위주의 조직원리로 편성됨. 따라서 각급 정부조직은 책임을 지고 관장하는 산업, 또는 품목을 가지고 있으며 이 분야에 대한 발전을 책임지는 것을 기본적인 사명으로 하고 있음.

- 정부 각 부처가 사실상 공동행위의 온상이 되어있고 정부의 지도하에 수 많은 사업자 단체를 통하여 각종의 경쟁제한적인 조치가 행해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정확한 문제인식과 개선이 필요함. 어떤 의미에서 ‘정부 주도 하의 관민 통합형 공동행위(담합)’가 보편화 되어있는 것이 한국의 경쟁구조의 실상임.

- 그런 의미에서 경쟁시장 최대의 적은 정부 그 자체이며 ‘시장실패’에 못지않게 ‘정부실패’를 경계해야 됨. 다시 말하면 시장경제에 있어서 정부의 바른 구조와 역할을 찾기 위해서는 무엇을 할 것인가 보다 무엇을 하지 말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중요함.

- 이런 관점에서 시장경제의 원리와 조화되는 정부의 기능과 역할이 정립되기 위해서는 지금의 정부의 조직과 운영원리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함.

- 이렇게 정부의 경제정책의 큰 흐름이 시장경제의 원리에서 보아 문제가 많고 정부의 조직원리나 운영행태가 반경쟁적인 요소가 너무 많은 현실에서 경쟁당국을 중심으로 독점방지와 공정거래 관련 법규의 운영을 통해서 경쟁정책을 수행해 나가는 데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음. 또 끊임없는 규제개선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큰 진전이 없는 것도 바로 여기에 근본 원인이 있음.

□ 경제와 관련부문의 운용원리의 일관성

- 시장의 원리는 반드시 경제 분야에 국한되어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님. 노사관계, 사회복지, 의료, 교육 등 분야는 그 시장의 성격이나 역할이 일반적인 경제 분야에 비하여 특수하고 제한적이지만 이러한 분야에서도 가능한 한 시장원리에 의하거나 이 원리와의 조화에 의한 문제해결 방식을 추구해야함.

- 이러한 분야에서 시장과 정부의 관계에서 한 나라가 실현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구체적 모습이 드러난다고 봄.

3. 경제ㆍ사회 현안의 시장경제적 조명

□ 거시경제 목표의 설정과 수정

- 현 정부 성립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 까지 대통령과 정부에 의해 경제 성장목표가 여러 번 바뀌었고 그 때마다 공약이나 정책목표의 파기 여부가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음.

- 제대로 된 시장경제를 하겠다면서 비록 계획경제(planned economy)경우와 같은 계획치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거시경제지표를 정부의 정책목표로 제시하는 것 자체가 가능하고 바람직한가?

- 따라서 이 문제는 공약의 파기 여부, 목표 성장률의 적정 여부의 문제인가? 아니면 시장경제의 원리와 조화될 수 없는 발상자체의 문제인가?

□ 재벌문제와 정부의 실패

- 한국의 재벌의 형성, 성장, 발전과정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한국경제 전반의 흐름, 정부의 경제운용 방식과 관계없이 이루어져 왔나?

- 재벌에 문제가 있다면 ‘기업의 실패’인가? ‘정부의 실패’인가?

- 재벌과 관련되어 제기되는 문제의 본질인 경제력 집중에 대한 문제의식은 국민의 형평욕구의 수용 등 사회, 정치적인가? 효율성의 관점에서 보는 경제적인가?

- 재벌문제의 해결을 위해 바람직한 접근방법은? 공정거래법의 경제력집중 억제 제도를 비롯한 재벌정책 관련 제도는 시장경제 원리와 조화되는 것인가? 보다 시장적인 방식에 의해 재벌 문제를 해결할 길은 없는지?

□ 노사현안과 시장논리

- 일단 결론이 난 문제지만 주5일 근무제(근로시간 단축 문제)를 노사정위원회가 합의하고 법제화하여 전 기업에 일률적으로 실시하는 집단주의적 접근방식으로 푸는 방식이 적절한가? 개별 기업단위에서 기업의 경쟁력과 노사양측의 협상력을 바탕으로 풀어갈 문제인가?

- 이 문제를 포함한 노사관계 현안 과제(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노조전임자 임금지급문제, 복수노조 설립허용과 교섭창구단일화 문제, 공무원노조 설립문제, 노사정위원회의 기능 개편문제 등 제도적 과제와 불법파업의 악순환과 노사교섭 관행의 개선 과제)의 해결을 위한 바람직한 정부의 역할과 노동시장의 역할은?

- 주요 사업장에서의 노사간 쟁의가 있을 때 정부의 개입에 의해 노사현안이 타결된 예가 많은데 이러한 방식이 시장적인가? 이 과정에서의 정부역할은 적절한가?

□ 국민건강과 의료보험 시장의 문제

- 국민의 건강문제를 기본적으로 의료시장에만 맡기는 시스템도 문제가 많지만 이 문제를 정부가 만든 하나의 틀에 넣어 정부 책임 하에서 해결하려는 시도가 성공할 수 있을까?

- 시장에서 의료서비스를 획득하여 스스로 건강문제에 대처할 능력과 의사를 가진 사람들의 건강문제까지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하나?

- 전 국민의 건강문제를 정부가 전부 책임진다는 발상 때문에 정부의 집중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할 사람들의 건강문제는 오히려 소홀히 되고 있지 않은지?

- 국민건강에 대한 정부의 기능과 민간의료 보험시장의 기능이 조화롭게 재설정되지 않고도 의료수급체계를 정상화하고 의료보험 재정의 파탄을 막는 것이 가능한가?

- 기타 각종 사회 보험에 있어서 보험과 보호의 기능 즉 시장과 정부의 기능을 조화하지 않고 제도의 지속적 유지가 가능할까?

□ 인적자원에 대한 수요와 공급문제

- 지식기반 경제에서 인적자원이 경제와 기업의 성패를 좌우할 요소로 부각되고 있는데 우리 사회의 이에 대한 문제인식은 적절한가?

- 현재와 같은 인적자원 수급체계는 한국경제의 지속적 발전을 뒷받침할 수 있을까?

- 인적자원의 최대 수요처라고 할 기업의 인적자원 수요에 상응하는 공급이 이루어지는 교육시스템을 가지고 있는가?

- 정부의 규제위주의 교육정책이 초래한 인적자원의 하향 평준화, 공급위주의 교육시스템, 수요자의 교육시장 참여기회 제한, 수급조절 시스템의 부재 등 시장원리와 반하는 요소가 교육의 전 부문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인적자원 문제의 본질이 아닌지?

- 여성의 생산성 증대를 수반하지 않는 여성인력에 대한 각종 보호 제도가 여성인력 고용의 양을 증대하고 질을 개선하는 데에 오히려 저해 요인이 되는 경우는 없는지?

4. 결 어 : 시장경제의 실현과 국가지도력

- 시장과 정부의 관계를 바람직하게 설정하고 시장경제체제를 확립하는 길 이외에는 경쟁력의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다고 봄. 그러나 이 시장경제를 추구해 나가는 데 있어서 극복하기 많은 걸림돌들이 있음.

- 가장 큰 걸림돌은 정치권, 정부나 관료뿐만 아니라 기업이나 국민 일반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비시장적, 폐쇄적 사고와 체질이라고 봄.

- 우리 국민은 강력한 정부나 정부의 각종 규제에 대한 깊은 저항의식이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모든 경제문제를 정부가 해결할 수 있는 것 같이 생각하는 이중적 의식구조를 가지고 있고 시장경제체제에서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고 봄.

- 우리 국민의식 속에는 개인주의 보다는 집단주의적 의식구조, 가열된 경쟁과 분명한 승자와 패자의 구분보다는 적당한 타협과 하향 평준화, 기회의 평등보다는 결과의 평등에 대한 선호, 국제화를 추구하더라도 우리에게 유리한 경우에만 해야 된다는 의식 등 시장경제와 조화되기 어려운 요소가 많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임.

- 다음으로 우리 기업들 역시 아직도 시장경제 하에서 가혹한 경쟁을 견디어 낼 각오가 되어 있으며, 정부의 규제는 철폐해 달라고 하면서 정부의 보호막은 온전히 지속해 주었으면 하는 모순된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는지 생각할 여지가 많음.

- 특히 정부나 정치지도자들이 경제정책과 관련분야의 정책을 일관성 있게 운영하지 않고 국민의 성향이나 인기를 염두에 두고 그때그때 편의에 맞추어 결정하는 대중영합적 접근을 하는 경우 시장경제의 원리는 하나의 수사(修辭)에 그칠 가능성이 큼.

- 정부가 시장경제의 원리와 부합되게 정부 역할을 설정하거나 정책수단을 채택하는 경우 단기적으로는 오히려 시장의 불안정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음. 고로 이의 상충(Trade-off)을 극복하고 이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에 대한 과도한 국민적 기대를 자제시켜야 하는데 이 것은 사실은 정부가 감당하기 매우 어려운 문제임.

- 이렇게 시장경제를 하기에 적합한 체질이 아닌 우리가 시장경제로의 길을 추구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험난한 것이 아닐 수 없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방향으로 우리의 체질과 인식구조를 바꾸는 것 이외의 대안이 없다고 봄.

- 그래서 혹자는 ‘한국경제 제3의 길’, ‘한국적 시장경제’ 또는 ‘사회(주의)적 시장경제’의 가능성을 논함. 그러나 이들은 그 실질이 빈약하고 국제경제의 흐름과 경쟁력 요소를 간과한 공허한 내용이어서 우리 경제운영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봄.

- 결론적으로 ‘열린 시장경제의 원리를 바탕으로 한 일관성 있는 경제 운용’이라는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back to the basic), 그리고 이 길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것 이외에 한국경제가 위기구조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음. 따라서 이를 실현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이 이 시대가 우리나라에 요구하는 진정한 의미의 국가 지도력이라고 봄.

[별첨] ‘달란트의 비유’가 한국경제에 주는 교훈

신약성서 마태복음 25장에 있는 이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어떤 사람이 세 사람의 하인에게 차례로 금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기고 타국으로 여행을 떠난다. 성경사전에 의하면 이 때 금 한 달란트는 34.27㎏이니 지금 우리 돈으로 약 5-6억 원 정도 되는 큰 돈이다.

오랜 여행에서 돌아온 주인이 이들과 결산을 한다. 다섯 달란트 받은 하인은 이를 밑천으로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고 두 달란트 받은 하인도 비슷하게 또 두 달란트를 남겼다. 주인은 이 두 하인을 향해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므로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길 것이며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리라”고 극구 칭찬 한다.

반면 한 달란트 받은 하인은 이 것을 그냥 묵혀 두었다가 그대로 주인에게 바친다. 주인은 격노하면서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네가 최소한 그 돈을 은행에 맡겨 이자라도 받아 본전과 같이 나에게 돌려 줘야 할 것이다” 하면서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마저 빼앗아 이미 열 달란트를 가진 자에게 더하여 준다. 그러면서 그를 향해서는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쓸 데 없는 자를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다”고 저주한다.

성경에는 경제와 관련된 내용이 매우 많다. 어떤 경제학자의 분석에 의하면 성경의 전 내용의 약 1/3이 직ㆍ간접으로 경제와 관련이 있는 구절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비유는 경제와 관련되는 이런 수많은 성경 구절 중에서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원리의 핵심적 요소를 가장 잘 나타내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또 오늘의 세계경제 질서를 잘 예견한 것으로 가열되는 세계경쟁 속에서 한 국민경제가 가야할 길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으며 특히 한국경제에 주는 교훈이 크다.

이 비유가 갖는 경제적 의미를 깊이 새겨 볼 필요가 있다. 이 이야기는 예수께서 직접 한 비유로서 현대어로 쓰인 영어성경(Good News Bible)에 의하면 “그 때에 천국의 모습은 이러 하리라(at that time, the Kingdom of Heaven will be like this)”라는 말로 시작한다. 단순한 이야기 꺼리가 아니고 천국의 모습을 예수께서 직접 묘사한 매우 흔치 않은 비유이니 의미심장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 내용을 깊이 생각해 보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음직한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천국의 모습과 너무나 다른데 주목하지 않을 수 없고 큰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받은 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은 게으름은 꾸중의 대상이 되어야겠지만 그래도 가장 적게 가진 사람은 동정을 받고 균형 차원의 사후적 배분을 받는 것이 상식이고 대개의 사람이 상상하는 천국의 모습일 것이다.

그런데 이 비유는 전연 다르다. 동정이나 사후적 배분은커녕 그나마 가진 것도 빼앗기고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이 이 것을 더해서 가진다. 이 것이 천국의 한 모습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독교의 천국의 일반적인 환상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 것이다.

인간 개개인이 가진 능력에 큰 차이가 있다는 것(according to his ability)이 전제되어 있고 이 차이에 따라 주어지는 달란트의 크기가 크게 다르며 그 성과도 당연히 크게 달라진다는 것을 분명히 한 내용은 연장선상에서 세계경제 속에서 어떤 국민경제의 현재의 모습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이 비유 속에는 왜 능력의 차이가 있는지 설명이 없고 이에 대한 불평을 하거나 이를 받아드리는 묘사도 전연 없다. 아마도 이는 신(神)의 영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보다 주어진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인간의 본분임을 강조하기 위함일 것이다. 한국경제가 당면한 문제의 여러 측면과 비교하여 얻을 교훈이 크다.

모든 과정과 결과에 적용되고 있는 엄격한 ‘유인과 징벌(incentive & penalty)의 원칙’에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쟁원리의 핵심이며 시장경제를 경쟁력 있는 체제로 만드는 가장 본질적 요소인 이 원칙이 성서에서 천국의 한 모습으로 이렇게 분명하게 기술되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시장경제는 경쟁원리에 서 있고 경쟁원리의 핵심적 요소는 바로 이 ‘유인과 징벌’의 원칙이다. 이 원칙이 분명하게 서야만 시장경제는 비로소 제대로 작동한다.

만약 이 원칙에 대한 분명한 인식도 없고 이를 확실하게 세우려는 의지도 없는 경우에는 말로는 아무리 시장경제 하겠다고 해도 허구(虛構)에 그칠 것이다. 이 것이 오늘날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의 주요한 배경의 하나가 되고 있다고 본다. 한국경제의 모든 문제는 이에서 비롯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