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산업대학교 철도전문대학원 KORAIL MBA과정 특강

중소기업연구원 원장 재임이후 : 2004년 8월 26일


위기구조 속의 한국경제 - 해법은 없나?


1. 경제 위기론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

오늘의 경제 상황이 위기적 상황인지 여부를 둘러싸고 우리 사회에는 요즈음 매우 심각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대체로 정부는 그러게 마련이지만 현 정부 역시 경제위기론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특히 노 대통령의 위기론에 대한 반응이 그렇다.

노 대통령은 얼마 전 연세대학에서 한 강연이나 17대 국회 개원식에서 한 연설 등에서 최근의 경제위기론을 강하게 부정하고 이런 논의 자체를 비판하면서 금년도에는 최소한 5% 수준, 내년 이후 임기 동안 매년 6% 수준의 성장이 가능하다는 낙관론을 펴면서 자신이 대통령으로 있는 한 한국경제는 걱정할 것이 없다는 강한 자신감을 피력한 바 있다. 이 이후 경제위기와 관련한 논의가 정부와 그 주변에서는 수면 아래로 한동안 잠복한 듯한 느낌이었으나 경제상황이 계속 호전되지 않자 최근 다시 점화되는 분위기다.

대통령이 경제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하면서 강한 자신감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가용 자원에 특별한 제약이 없는 한 경제의 성과는 경제주체들의 경제에 대한 기대와 확신의 종합으로 나타나게 되기 때문에 주요한 경제주체인 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의 경제에 대한 자신감은 일단 매우 고무적인 현상으로 보아도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에게는 경제가 매우 쉬운 대상인 것 같이 보인다. 하기야 경제학의 기초개념인 수요 공급의 법칙만 제대로 이해하면 웬만한 경제현상은 이해와 설명이 가능하다. 그래서 앵무새도 10분만 수요 공급을 따라하게 하면 훌륭한 경제학자가 될 수 있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쉬운(?) 경제의 세계에 있어서 대통령의 그러한 자신감에도 불구하고 정부보다 더 중요한 또 다른 경제 주체인 기업들과 소비자들로부터 오늘의 우리 경제를 낙관하고 좀 더 적극적으로 투자 활동을 하거나 좀 더 적극적으로 묶어 왔던 주머니를 풀어 소비를 확대하려는 기도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국내외 경제예측기관들이 다투어 금년도 우리 경제의 전망을 하향 조정하고 있고 내년도 전망도 점점 불투명한 방향으로 가는 것을 보면 이들의 생각과 대통령이 지도하는 정부의 생각 사이에는 큰 괴리가 있는 것이 틀림없고 경제가 노 대통령의 생각처럼 그렇게 간단한 대상은 아닌 모양이다.

2. 경제 위기론의 성격

그런데 문제는 경제의 어려움 내지 위기를 논하는 데 있어서 위기의 본질적 성격을 어떻게 보고 접근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구체적으로는 작금의 경제현상이 기대한 것만큼 또는 계획한 것만큼 성과를 거두고 있느냐 여부를 기준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이런 단기적인 성과에 관계없이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의 본질을 규명하고 오늘의 경제상황을 이런 구조적 문제와 연결하여 이해하면서 우리 경제의 위기적 측면을 논하느냐에 따라 위기론의 성격은 전혀 달라진다고 본다.

이것은 위기론을 논함에 있어서 주로 경기 순환적 관점에서 볼 것이냐 아니면 구조적 시각에서 볼 것이냐의 문제로 귀착된다. 이런 관점의 문제가 먼저 정립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위기논쟁은 전연 무의미하다고 본다.

노 대통령은 앞의 강연과 연설에서 위기론을 부정하면서 동시에 단기적으로 경제의 성과를 높이기 위해 경기부양 목적의 정책수단을 동원하지 않겠다는 점도 천명했다. 과거 정부에 있었던 경기부양 노력이 가져온 문제점들을 낱낱이 지적했다. 이를 보면 그는 주로 경기 순환적인 관점에서 대두되는 위기론을 경계하고 있는 듯 하다. 매우 옳은 문제 인식이라고 본다.

필자도 수많은 강연과 기고를 통해 경기순환적 관점에서 조성되는 위기론을 경계하고 과거의 경기부양책이 우리 경제에 가져 온 구조적 왜곡을 지적해 왔다.(한경 다산칼럼 2002.10.7자 “고 성장주의 이제 그만”, 2003.8.8자 “경기예측 무용론”, 2003.12.8자 “위기의 본질을 모르는 위기”, 2004.6.11자 “경제위기의 본질” 등 참조)

그러나 대통령의 경제위기론의 부정이나 비판이 우리 경제의 위기구조의 본질적 측면까지 과소평가하거나 부정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3. 한국경제의 위기구조의 본질

경기침체와 성장률의 저하가 위기의 본질은 아니며 자본주의 경제는 속성상 어느 경제라도 경기의 순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결과로서 드러난 경제의 성적만을 가지고 위기적 상황이라 보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우리경제의 침체가 금년에 끝나지 않고 일본과 같은 장기 침체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고 이런 상황을 위기의 본질로 인식하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일본경제의 문제는 경기순환의 문제가 아니고 일본경제의 구조적 문제라는 데 대한 인식이 우리에게는 결여되어 있다. 하기야 당사자인 일본 스스로도 소위 ‘잃어버린 10년’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지나간 뒤에야 이에 대한 인식을 하기 시작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인식이 철저한 지도 의문이다.

즉 이 구조적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인식의 결여가 일본을 ‘잃어버린 10년’에 빠뜨린 근본적인 원인이며, 이 문제에 대한 구조적 대응을 하지 못하는 경우 일본은 ‘잃어버릴 10년’에 대한 우려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최근 일본경제의 재생에 대한 기대가 팽배해 있으나 일본경제를 주로 구조적 측면에서 관찰한다면 속단은 빠르며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우리는 다만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일본경제로부터 유효한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일본 경제의 구조적 문제점과 관련한 필자의 견해에 대해서는 한국경제신문 2004.7.19자 다산칼럼 “경제추락도 일본 닮을 것인가?” 참조)

어떤 국민경제나 제대로 된 경제라면 성공의 신화와 위기의 경험을 동시에 갖게 마련이다. 그러나 지속적인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은 과거의 ‘성공신화로부터의 탈출’과 ‘위기로부터의 유효한 교훈의 습득’이다. 먼저 과거 한국 경제의 성공을 가져왔던 한국경제의 3대 성공신화 즉 ‘고도성장의 신화’, ‘한국주식회사의 신화’, ‘경제제일주의의 신화’는 더 이상 유효하지 못하다.

‘성공신화로부터의 탈출’ 즉 기존의 ‘경제운영 틀’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 없이는 변화하는 세계경제 여건 하에서 한국이 앞으로 생존ㆍ발전할 수 없다고 본다.

IMF경제위기는 한국이 기존의 경제운영의 구조적 문제점을 반성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어떤 의미에서 위장된 축복( blessing in disguise)이었다.

IMF를 겪고도 우리 경제의 위기구조에 본질적인 변화가 없는 이유는 우리 사회와 정부가 IMF위기의 원인과 배경이 되는 우리 경제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에 대한 균형 있고 편견 없는 분석을 시도하지 않은 채 IMF체제를 극복하려고 한 데 있다고 본다.

즉 이 위기의 배경과 본질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이 결여됨으로써 한국은 이로부터 적절한 교훈을 얻는데 실패했고 오늘날 끊임없는 위기론을 배태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고 본다.

끝없는 내수의 추락 즉 투자수요와 소비심리의 동결로 구체화되고 있는 현상으로서의 우리 경제의 위기적 모습의 배후에는 보다 본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은 바로 경제의 불확실성, 장래 전망의 불투명성이다. 기업의 투자심리를 반전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경제의 흐름을 선순환으로 전환하여 경제위기의 재생산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 구조적 문제의 본질에 대한 내과적 진단과 처방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를 포함하여 우리 사회의 접근은 주로 외과적 처방과 조치에 주력하고 있는 것 같다.

이 구조적 문제는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 한국 경제의 취약한 국제경쟁력 구조, 경제주체들의 이에 대한 확신의 결여
▲ 경쟁력을 보장해 주는 경제시스템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선택의 결여
▲ 이로부터 초래되는 경제운영 원리의 불투명성,
▲ 대외 의존적 경제구조 하에서도 세계경제흐름에 대한 인식의 부족,
▲ 이 흐름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국민의식과 경제운용 방향,
▲ 경제와 비경제 부문간 국정운영 원리의 일관성 결여 등이다

요약컨대 ‘급변하는 세계경제 환경 속에서 이 흐름과 조화되면서 우리의 경쟁력을 보장해주는 경제시스템에 대한 확신과 선택 그리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결여’가 우리경제의 위기구조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경제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는 경제외적 측면(안보, 남북문제, 대미 공조관계의 변화 방향, 정치의 불안정 등)이 더해져서 위기의 구조적 성격이 보다 심각해지고 있다.

이 위기의 구조적 성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위기라고 본다. 어떤 의미에서 한국경제의 위기는 ‘위기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위기’로 규정될 수 있다.

4. 위기구조의 극복을 위한 인식의 재정립

‘선택과 결단의 위기’라고 할 수 있는 우리 경제 위기구조의 극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문제의 본질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선행돼야 한다.

가. 경쟁력에 대한 인식과 경제시스템에 대한 선택

WEF, IMD등 주요 국제 경쟁력 평가기관의 평가 결과에 의하면 한국경제는 IMF 위기 이후 급격히 경쟁력이 하락되는 모습을 보이다가 2000년을 고비로 이전 수준으로 다소 회복하였다.

그러나 다시 2002년 이후 회복세가 둔화되고 있으며 IMD의 평가에 의하면 오히려 하락세로 반전하고 있다. 즉 IMF경제위기를 경험하고 그간 각 분야의 구조개선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경제의 외형적 성과에 비해 극히 취약한 경쟁력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어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더불어 완성되는 새로운 세계경제질서(Boardless Economy, Globalization, Knowledge- based Economy)속에서 한국이 어떻게 경쟁력을 유지 발전시키면서 생존해 갈 것인가, 그러기 위해서 어떤 경제시스템을 채택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계속 부딪혀 왔으나 아직도 분명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WTO의 뉴라운드 출범, 중국경제의 WTO 가입, 지역간 자유무역협정 체결의 증대 현상 등 국제환경의 변화는 우리 경제가 생존하고 계속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우리 경제의 경쟁력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를 해야 하는 단계에 와 있음을 보여 준다.

경제의 최대 이슈는 경쟁력이며 이 경쟁력은 그것을 유지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경제시스템에 대한 분명한 선택이 없이는 절대로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이를 보장하는 유일한 시스템이 시장경제체제라는 사실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필요하다.

나. 시장경제에 대한 이해

시장경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 두 가지에 대해 유의하여야 한다.

첫째는 시장경제 사상이나 이론이 아담 스미스 이후 유럽과 미국에서 생성, 발전돼 온 것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큰 오류이며 경제의 자연스러운 흐름의 본질을 간파한 이론은 지금부터 2000년 전 이미 동양에 있었다.

BC 90년경 중국 진(晉)나라 시절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에 나오는 다음의 구절은 시장경제의 본질에 대한 최고의 설명으로서 아담스미스의 『국부론(1776년)』 보다 1870여 년 전에 이미 시장경제의 원리를 갈파하고 있다.

농민들이 곡식을 생산하고, 어부나 사냥꾼이 고기를 생산하고, 기술자들이 물건을 만들고, 상인들이 이를 유통시킨다. 이러한 일들이 어찌 나라의 정령(政令)이나 교화나 징발이나 혹은 사전에 한 약속에 의해서 행해지는 것들이겠는가? 사람은 각자 자기자신의 능력에 맞추어 그 힘을 다해서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것이다. 때문에 물건 값이 싼 것 은 장차 비싸질 징조이며, 값이 비싼 것은 장차 싸질 징조이다. 사람 마다 자신의 일에 힘쓰고 각자의 일을 즐겁게 하면, 이는 마치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과 같아 물자의 흐름도 밤낮 멈추는 때가 없다.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몰려들고 억지로 구하지 않아도 백성들은 물품을 만들어 낸다. 이 어찌 도(道)에 부합되는 것이 아니며, 자연스러움의 증명이 아니겠는가?


둘째는 이렇게 시장경제는 물 흐르듯 유연한 제도이지만 반드시 시행하기 쉬운 제도는 아니며 더욱이 정부가 말로 한다고 해서 되는 제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시장경제를 하기위해서는 경쟁력을 유지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경제시스템에 대한 사회의 지도자들의 확신과 일관성 있는 선택, 그리고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시장경제를 한다면 우선 경쟁원리를 받아드리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이것은 바로 신약성서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의 비유’에서 적절하게 설명되는 ‘유인과 징벌(incentive & penalty)의 원칙이 확립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알고 있는 이 유명한 ‘달란트의 비유’의 경제적 의미에 대해 다시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별첨 : 『‘달란트의 비유’가 한국경제에 주는 교훈』참조)

다음으로 수요자 중심적 orientation, 완전한 국제화(개찰구 없는 개방화)가 경제의 모든 부문에 정착되는 것도 빼 놓을 수 없는 시장경제의 기본적 요소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장에 대한 정부의 역할을 분명하게 설정하여 시장의 것은 시장이, 정부의 것은 정부가 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전제되어야 한다.

시장경제의 원리와 부합되는 정부 역할의 설정이나 정책수단의 채택은 단기적으로 시장의 불안정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의 상충(Trade-off)을 극복하고 이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에 대한 과도한 국민적 기대를 자제시켜야 하는 매우 어려운 문제가 있다.

우리 국민은 강력한 정부나 정부의 각종 규제에 대한 깊은 저항의식이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모든 경제문제를 정부가 해결할 수 있는 것 같이 생각하는 이중적 의식구조를 가지고 있고 시장경제체제에서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고 본다.

우리 기업들 역시 아직도 시장경제 하에서 가혹한 경쟁을 견디어 낼 각오가 되어 있지 않으며, 정부의 규제는 철폐해 달라고 하면서 정부의 보호막은 온전히 지속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반성해야 한다.

즉 시장경제와 ‘글로벌 스탠다드’를 추구해 나가는 데 있어서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걸림돌은 정치권, 정부나 관료뿐만 아니라 기업이나 국민 일반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비시장적, 폐쇄적 사고와 체질이다.

우리 국민의식 속에는 개인주의 보다는 집단주의적 의식구조, 가열된 경쟁과 분명한 승자와 패자의 구분보다는 적당한 타협과 하향 평준화, 기회의 평등보다는 결과의 평등에 대한 선호, 국제화를 추구하더라도 우리에게 유리한 경우에만 해야 된다는 의식 등 시장경제와 조화되기 어려운 요소가 많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나 정치지도자들이 경제정책과 관련분야의 정책을 일관성 있게 운영하지 않고 국민의 성향이나 인기를 염두에 두고 그때그때 편의에 맞추어 결정하는 대중영합적 접근을 하는 경우 시장경제의 원리는 하나의 수사(修辭)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시장경제를 하기에 적합한 체질이 아닌 우리가 시장경제로의 길을 추구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험난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방향으로 우리의 체질과 인식구조를 바꾸는 것 이외의 대안이 없다고 본다.

다. 세계화 현상(Globalization)에 대한 인식

소위 ‘세계화(Globalization)’의 개념이나 의미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가 있으나 “생산물은 물론 생산요소까지 자유로운 국경 간 이동 현상이 심화되는 가운데 이를 바탕으로 기업경영이 국경을 초월하여 이루어지는 현상과 이를 향하여 국가의 모든 제도와 정책이 변해가는 과정”으로 정의할 때 그 실체가 분명해진다.

즉 세계화의 경제적, 기업적 의미에 주목해야 그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세계화(Globalization)현상은 국가와 기업, 개인 등 당사자의 호ㆍ불호, 선택 여부와 관계없이 진행되는 세계적 추세다.

Thomas Friedman(NYT 칼럼니스트)은 그가 쓴 ‘The Lexus & The Olive Tree’에서 이런 세계적 추세와 이에 통용되는 새로운 ‘게임의 법칙’을 밝히면서 세계는 이에 따르는 길(이를 Lexus라고 칭함)을 걸으려는 사람과 이를 거부하고 기존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태도(이를 Olive Tree라 칭함)를 갖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과 반목이 심화되고 있는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

기존의 보수와 진보의 논쟁은 실질적으로 별 의미가 없으며 이런 추세를 인정하고 이 ‘게임의 법칙’ 즉 글로벌 자본, 자유시장규범 및 제도, 의식과 행태 등에 참여할 것이냐 아니면 이를 거부하고 독자적이거나 과거 지향적 사고와 행태에 집착하고 그 결과 세계경제에서 도태될 것이냐의 문제만 남아있다고 Friedman은 보고 있다.

‘Lexus’는 ‘Olive Tree’로부터 주로 그 무차별성과 무자비함 때문에 강한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응하는 최선의 방책은 우선 이 길의 논리와 작동원리를 이해하여 이 길을 택함으로 오는 혜택을 최대한으로 늘리고 그 고통을 최소화하는 길을 찾는 것이라고 Friedman은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 추세로부터 국가적 이익을 가장 많이 향유할 수 있는 나라 중의 하나이나 문제는 이에 대한 국가 사회적 인식이 적절하지 못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점이다.

우리나라가 당면하고 있는 국정혼란과 사회적 갈등의 본질 역시 Olive Tree와 Lexus의 선택의 기로에서 맞는 갈등과 반목의 관계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잘살기를 원하면서도 잘 살기 위해서 힘들고 어렵더라도 세계가 보편적으로 추구하고 인정하는 ‘세계 식으로 살 것’에 대한 국가적 선택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있다. 북한과 같이 ‘우리 식대로’ 살려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잘 살기를 바라는 모순적인 국민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라. 경제체제의 유지를 위한 노력

중앙일보 여론조사(2003. 4. 28)에서 국민의 절반가량이 ‘기업을 좋지 않게 생각 한다’고 응답했고, 특히 대기업과 재벌에 대해서는 57.3%가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또한 다국적 여론조사 기관인 테일러 넬슨 소프레(TNS)가 세계 33개국 정규직 근로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2002년 11월)한 결과에 의하면 직장에 애착을 갖고 있는 한국인은 10명중 3명에 불과해 조사대상 중 최하위(33위)를 보인 바 있다.

즉 우리 사회에는 반 기업ㆍ반 시장 정서가 심각한 수위에 달해 있고 건전한 직업관도 확립되지 못하고 있는 바 이는 자유시장경제의 근본을 흔드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지도층은 이에 대한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시장경제체제 유지를 위한 노력과 비용을 지불할 각오를 해야 된다고 본다. 특히 학생, 젊은 층을 중심으로 체계적인 경제교육에 힘을 모아야 한다.

자유시장경제체제가 가장 발달된 미국은 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으며, 국민들의 경제의식을 바로 잡기 위해 유치원부터 전 국민을 대상으로 각종 경제교육프로그램 등을 운용하고 있는바 좋은 참고가 된다.

여기에 더하여 사회의 상층부가 솔선수범하는 Noblesse Oblige는 우리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이 항상 고려해야 할 규범적 태도이자 전략이라고 본다. 건전한 경제ㆍ사회체제의 유지 발전을 위한 비용부담 의식과 적정 수준의 ‘부의 사회 환원’은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유지하고 노사의 대립, 빈부의 대립, 세대의 대립 관계를 근본적으로 극복하여 우리가 추구하는 자유시장경제체제의 존립과 발전을 담보해주는 중요한 밑바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별첨]‘달란트의 비유’가 한국경제에 주는 교훈

신약성서 마태복음 25장에 있는 이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어떤 사람이 세 사람의 하인에게 차례로 금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기고 타국으로 여행을 떠난다. 성경사전에 의하면 이 때 금 한 달란트는 34.27㎏이니 지금 우리 돈으로 약 5-6억 원 정도 되는 큰 돈이다.

오랜 여행에서 돌아온 주인이 이들과 결산을 한다. 다섯 달란트 받은 하인은 이를 밑천으로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고 두 달란트 받은 하인도 비슷하게 또 두 달란트를 남겼다. 주인은 이 두 하인을 향해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므로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길 것이며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리라”고 극구 칭찬 한다.

반면 한 달란트 받은 하인은 이 것을 그냥 묵혀 두었다가 그대로 주인에게 바친다. 주인은 격노하면서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네가 최소한 그 돈을 은행에 맡겨 이자라도 받아 본전과 같이 나에게 돌려 줘야 할 것이다” 하면서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마저 빼앗아 이미 열 달란트를 가진 자에게 더하여 준다. 그러면서 그를 향해서는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쓸 데 없는 자를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다”고 저주한다.

성경에는 경제와 관련된 내용이 매우 많다. 어떤 경제학자의 분석에 의하면 성경의 전 내용의 약 1/3이 직ㆍ간접으로 경제와 관련이 있는 구절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비유는 경제와 관련되는 이런 수많은 성경 구절 중에서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원리의 핵심적 요소를 가장 잘 나타내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또 오늘의 세계경제 질서를 잘 예견한 것으로 가열되는 세계경쟁 속에서 한 국민경제가 가야할 길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으며 특히 한국경제에 주는 교훈이 크다.

이 비유가 갖는 경제적 의미를 깊이 새겨 볼 필요가 있다. 이 이야기는 예수께서 직접 한 비유로서 현대어로 쓰인 영어성경(Good News Bible)에 의하면 “그 때에 천국의 모습은 이러 하리라(at that time, the Kingdom of Heaven will be like this)”라는 말로 시작한다.

단순한 이야기 꺼리가 아니고 천국의 모습을 예수께서 직접 묘사한 매우 흔치 않은 비유이니 의미심장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 내용을 깊이 생각해 보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음직한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천국의 모습과 너무나 다른데 주목하지 않을 수 없고 큰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받은 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은 게으름은 꾸중의 대상이 되어야겠지만 그래도 가장 적게 가진 사람은 동정을 받고 균형 차원의 사후적 배분을 받는 것이 상식이고 대개의 사람이 상상하는 천국의 모습일 것이다.

그런데 이 비유는 전연 다르다. 동정이나 사후적 배분은커녕 그나마 가진 것도 빼앗기고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이 이 것을 더해서 가진다. 이 것이 천국의 한 모습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독교의 천국의 일반적인 환상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 것이다. 인간 개개인이 가진 능력에 큰 차이가 있다는 것(according to his ability)이 전제되어 있고 이 차이에 따라 주어지는 달란트의 크기가 크게 다르며 그 성과도 당연히 크게 달라진다는 것을 분명히 한 내용은 연장선상에서 세계경제 속에서 어떤 국민경제의 현재의 모습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이 비유 속에는 왜 능력의 차이가 있는지 설명이 없고 이에 대한 불평을 하거나 이를 받아드리는 묘사도 전연 없다. 아마도 이는 신(神)의 영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보다 주어진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인간의 본분임을 강조하기 위함일 것이다. 한국경제가 당면한 문제의 여러 측면과 비교하여 얻을 교훈이 크다.

모든 과정과 결과에 적용되고 있는 엄격한 ‘유인과 징벌(incentive & penalty)의 원칙’에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쟁원리의 핵심이며 시장경제를 경쟁력 있는 체제로 만드는 가장 본질적 요소인 이 원칙이 성서에서 천국의 한 모습으로 이렇게 분명하게 기술되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시장경제는 경쟁원리에 서 있고 경쟁원리의 핵심적 요소는 바로 이 ‘유인과 징벌’의 원칙이다. 이 원칙이 분명하게 서야만 시장경제는 비로소 제대로 작동한다.

만약 이 원칙에 대한 분명한 인식도 없고 이를 확실하게 세우려는 의지도 없는 경우에는 말로는 아무리 시장경제 하겠다고 해도 허구(虛構)에 그칠 것이다. 이 것이 오늘날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의 배경이 되고 있고 따라서 한국경제의 모든 문제는 이에서 비롯하고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