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터리클럽 강연

중소기업연구원 원장 재임이후 : 2004년 8월 17일


한국경제 장기 불황으로 가는가? - 일본경제로부터의 교훈


국내적으로 점증되어 가는 경제위기의식은 대조적인 다른 나라들의 경제모습과 대비되면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
중국경제는 말 할 것도 없지만 비교적 저조했던 미국경제도 초 저금리기조로부터 벗어날 만큼 상승 국면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장기 경제침체의 대명사와 같았던 일본경제가 길고 긴 터널을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본의 경우 일부 언론에서 ‘복합호황’이라고 다소 성급하게 부를 정도로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우리의 위기의식은 더욱 가중되는 감이 있고 새삼 일본 경제와 우리 경제를 비교 분석하면서 일본경제가 경험했던 소위 ‘장기ㆍ복합 불황’을 우리도 답습하는 것이 아닌지, 그러한 불황의 진정한 배경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많은 논의들이 우리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다.

10여 년 전 정부에서 물러나 소비자보호원장을 하고 있던 필자는 일본방문의 기회를 이용하여 일본 경제기획청 심의관 등 일본의 경제정책 입안자들과 일본경제의 현상에 대해 의견교환을 하는 기회를 가졌다. 당시 일본은 92년부터 시작한 과거에 경험한 바 없는 성격의 불황이 몇 년째 계속되고 있던 시점이었다.

당시 필자는 경제정책 입안의 책임에서 벗어나 있었지만 일본경제의 문제점을 주로 구조적인 관점에서 나름으로 이해하고 있었기에 과거 경험하지 않았던 이 현상이나 현상의 배후에 있는 본질적이고 구조적 문제점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일본의 경제정책 입안자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이나 대처방향이 매우 궁금했었고 일본 경제에 대해 주로 구조적 관점에서 필자가 가지고 있는 견해를 중심으로 이 들과 의견을 교환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 들을 비롯하여 당시 일본정부의 그 누구도 92년부터 시작되어 2-3년째 진행되고 있었던 당시 일본경제의 불황현상을 경기순환 이상의 구조적 문제로 받아드리기를 거부했다. 그 들은 하나 같이 일본 경제가 경기순환에 있어서 이미 바닥을 쳤으니 곧 반등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 보인 것 같이 이 바닥은 그 끝을 모르게 내려앉았다.
결국 일본은 소위 ‘잃어버린 10년’속에서 90년대 전부와 200년대 초반을 보내 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경기가 바닥을 드러낼 때 마다 이의 회복을 위해 각 종 이름으로 9차에 걸쳐 무려 123조 엔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썼지만 효과가 없었다.
최근에 와서는 인식의 오류에 바탕을 둔 잘 못된 정책판단으로 비판받고 있지만 일본에 있어서 정부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에게 까지 이런 식의 일반적 인식에 반성을 시작한 것은 훨씬 후의 일이었다.

즉 일본 사회나 정부가 이런 현상을 단순한 경기순환 이상으로 일본 경제의 구조적 문제의 노출과정 그리고 이의 수습과정에서 초래되는 결과적 현상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후반에 가서 잃어버린 10년이 되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진행되고 난 뒤의 일이었다.

훨씬 뒤에 일본이 이런 구조적 문제를 부분적으로라도 인식하기 시작했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드리고 일본경제의 구조와 체질을 바꾸기에는 국민적 인식도 미흡했고 무엇보다도 이를 추진해 갈 정치적 리더십에 큰 문제가 생겨 있었다. 문제해결 능력을 상실한 일본 사회의 경직성과 지도력 부재의 문제였다.
‘잃어버린 10년’에 이어‘잃어버릴 10년’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배경일 것이다.

일본은 흔히 ‘55년 체제’라고 불리는 독특한 경제ㆍ사회구조와 국가운영체제를 유지해 왔다. 2차 대전을 거치고 맥아더 군정치하에서 개혁과정을 거치고 형성된 바로 그 국가 운영 시스템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전 특수까지 힘입어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고성장 경제를 이룩하면서 전후 경제대국으로 이르게 한 일본의 성공신화의 배경에 있는 경제 시스템 바로 그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자민당 장기 집권구조이며 경제적으로는 정(政)ㆍ재(財)ㆍ관(官)의 공고한 철의 3각 구조, 흔히 일본주식회사로 불리는 정부 지도하의 선단식 기업경영 체제, 기업 내 종신고용제 등 독특한 노사관계 등이 그 핵심 요소를 이루고 있었다.
이런 체제는 필연적으로 관민통합(협조)형의 변형된 시장경제체제로 나타났고 그래서 일부 경제학자들에 의해서는 시장경제 적 속성이 부정되기에 이르렀다. 또 수요자 또는 소비자 보다는 생산지 내지 공급자 중심의 경제구조로서의 특징이 고착되어 왔다.

요컨대 시장 기능의 위축, 정부와 시장기능의 미분화로 특징 지워지는 이런 식의 일본경제는 필연적으로 정부의 고성장 정책과 기업의 과도한 팽창적 경영 전략을 유발했고 금융이 이를 뒷받침했다. 이 과정에서 금융, 부동산. 시설, 고용 등에 거대한 거품이 끼게 되었던 것이다.

일본의 장기 불황은 이런 거품들이 붕괴되면서 시작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보다 더 본질적이고 구조적인 일본경제의 문제는 바로 일본의 성공을 가져다 준 이런 유형의 일본 특유의 경제구조가 80년대 말부터 근본적으로 변화되는 세계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 하에서 더 이상 유효한 시스템으로 작동될 수 없었다는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 변화의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고 이에 맞게 피나는 구조조정 과정을 거쳐 새롭게 경쟁력 있는 경제로 거듭난 미국 등 성공적인 경제에 비해 일본은 과거의 성공 경험과 신화에 매몰되어 이 흐름에 동승하는 데에 실패했던 것이다.

최근 일본 경제가 본격적인 회복을 보이는 징후가 뚜렷하게 보이고 있고 우리 처지를 일본과 비교해서 매우 부러워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본이 정치적인 면에 있어서 자민당 영구집권구조는 막을 내렸지만 이 이외 경제ㆍ사회에 깔려있는 문제의 본질이나 배경에 있는 구조적 요소들을 극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더욱이 그런 결과가 경기의 회복이란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너무 속단이 아닌가 생각된다.
일본 경제의 장기 향방은 여전히 우리 경제의 주목의 대상이 돼야 할 것이다.

끝없는 내수의 추락 즉 투자수요와 소비심리의 동결로 구체화되고 있는 현상으로서의 우리 경제의 위기적 모습의 배후에는 보다 본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은 바로 경제의 불확실성, 장래 전망의 불투명성이다. 기업의 투자심리를 반전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경제의 흐름을 선순환으로 전환하여 경제위기의 재생산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 불확실성, 불투명성의 원인이 되는 구조적 문제의 본질에 대한 내과적 진단과 처방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를 포함하여 우리 사회의 접근은 주로 외과적 처방과 조치에 주력하고 있는 것 같다.

이 구조적 문제는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 한국 경제의 취약한 국제경쟁력 구조, 경제주체들의 이에 대한 확신의 결여
▲ 경쟁력을 보장해 주는 경제시스템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선택의 결여
▲ 이로부터 초래되는 경제운영 원리의 불투명성,
▲ 대외 의존적 경제구조 하에서도 세계경제흐름에 대한 인식의 부족,
▲ 이 흐름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국민의식과 경제운용 방향,
▲ 경제와 비경제 부문간 국정운영 원리의 일관성 결여 등이다

요약컨대 ‘급변하는 세계경제 환경 속에서 이 흐름과 조화되면서 우리의 경쟁력을 보장해주는 경제시스템에 대한 확신과 선택 그리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결여’가 우리경제의 위기구조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경제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는 경제외적 측면(안보, 남북문제, 대미 공조관계의 변화 방향, 정치의 불안정 등)이 더해져서 위기의 구조적 성격이 보다 심각해지고 있다.
이 위기의 구조적 성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위기라고 본다.

어떤 의미에서 한국경제의 위기는 ‘위기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위기’, ‘선택과 결단의 위기’,로 규정될 수 있다.

문제가 이렇다면 우리 경제의 위기구조 역시 일본이 경험한 것과 본질적으로 같다고 본다. 문제의 인식이 늦고 구조적인 대응보다도 주로 경기 순환적 측면에서 위기 여부를 판단하는 우리 사회의 인식 수준도 일본경우와 다르지 않다.
다른 것이 있다면 우리 경제의 실상이 일본이 이런 위기구조에 진입할 때 보다 훨씬 취약하다는 점이다. 기술에 뒷받침된 거대한 제조업부문의 생산력으로 10여년을 버틴 일본경제의 체질에 크게 못 미치는 우리 경제의 실력은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다.
여기에 대해 우리에게는 일본에 없는 정치와 안보 면에서 더 중요한 경제외적 불안요소까지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경제가 외형적으로 상당히 깊고 긴 불황의 터널을 지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경제의 어려움이 경기순환 과정에서 오는 불황이라면 그 불황의 골이 깊고 길더라도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위기론이 지나치게 확대 거론되거나 이를 근거로 경기부양 목적의 여러 가지 정책수단이 동원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 경제가 갖는 구조적 문제점의 심각성은 아무리 강조돼도 지나치지 않다. 경기의 호ㆍ불황에 관계없이 이 구조적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고 이에 근본적으로 대응하는 노력이 없을 때 10년 후의 우리 경제가 어떤 모습이 될지는 일본의 예가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될 것이다.

일본경제로부터 유효한 교훈을 얻고 국가경영 특히 경제운용에 깊이 참고하는 국가지도력과 기업경영자의 혜안이 어느 때 보다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