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OVE CO. 8월호 Vol.25, 20~23면

중소기업연구원 원장 재임이후 : 2004년 8월 16일


[창간특집 한국경제 긴급진단] 위기구조부터 바로 이해하자 - 시장의 것은 시장이, 정부의 것은 정부가 하게 하라


우리 경제가 위기적 상황인지 여부를 둘러싸고 심각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어느 정부나 그러했지만 이 정부 역시 경제위기론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의 거부반응은 매우 심각하다. 대통령은 최근 연세대학에서의 강연과 17대 국회 개원식 연설을 통해 경제위기론을 강하게 부정하고 이런 논의 자체를 비판하면서 올해에는 5% 수준, 내년 이후 임기 동안 매년 6% 수준의 성장이 가능하다는 낙관론을 펴면서 자신이 재임하는 한 우리 경제는 걱정할 것이 없다는 강한 자신감을 피력했다. 이후 경제위기와 관련한 논의가 적어도 공공부문에서는 수면 아래로 잠복한 느낌이다.

대통령이 경제에 자신감을 갖고 낙관적인 전망을 지니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가용 자원에 특별한 제약이 없는 한 경제의 성과는 경제주체들의 경제에 대한 기대와 확신의 결과의 종합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주요 경제주체인 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의 자신감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에게 경제는 매우 쉬운 대상처럼 보인다. 하기야 경제학의 기초개념인 수요 공급의 법칙만 제대로 이해하면 웬만한 경제현상은 이해와 설명이 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앵무새도 10분만 수요 공급을 따라 하면 훌륭한 경제학자가 될 수 있다는 우스개도 있다.

이렇게 쉬운(?) 경제의 세계에서 대통령의 확고한 자신감에도 불구하고 정부보다 훨씬 중요한 경제 주체인 기업과 소비자들이 경제를 낙관하고 좀 더 적극적으로 투자활동을 하거나 좀 더 적극적으로 주머니를 열어 소비를 늘리려는 시도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각 경제예측기관들이 최근 앞 다퉈 우리 경제의 전망을 하향 조정하는 것을 보면 이들의 생각과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 사이에는 큰 괴리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 대통령의 생각만큼 경제가 그렇게 쉬운 대상은 아닌 모양이다.

위기지속은 IMF의 본질 제대로 인식못한탓

문제는 경제의 어려움 내지 위기를 논하는 데 있어서 위기의 본질적 성격을 어떻게 보고 접근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작금의 경제현상이 기대한 것만큼 또는 계획한 것만큼 성과를 올리고 있느냐 여부를 기준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이런 단기적 성과에 관계없이 경제의 구조적 문제의 본질을 규명하고 오늘의 경제상황을 이런 구조적 문제와 함께 엮어 이해하면서 위기적 측면을 논하느냐에 따라 위기론의 성격은 전혀 달라진다. 이는 위기론을 논함에 있어서 경기 순환적 관점에서 볼 것이냐 아니면 구조적 시각에서 볼 것이냐는 문제로 귀착된다. 이런 관점이 먼저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위기논쟁은 무의미하다.

노 대통령이 위기론을 부정하고 단기적으로 경제의 성과를 높이기 위해 경기부양 목적의 정책수단을 동원하지 않겠다며 과거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초래한 문제점들을 낱낱이 지적한 것을 보면 그는 주로 경기 순환적인 관점의 위기론을 경계하는 듯하다. 그러나 대통령과 정부가 경제 위기의 본질적, 구조적 측면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으며 이런 구조적 측면과 오늘날 당면한 경제 상황과의 관계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경기침체와 성장률의 저하가 위기의 본질은 아니다. 자본주의 경제는 속성상 어느 경제라도 경기의 순환으로부터 자유스러울 수 없다. 때문에 결과로서 드러난 경제의 성적표만 보고 위기적 상황이라고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우리 경제의 침체가 금년으로 끝나지 않고 일본처럼 장기 침체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고 이런 상황을 위기의 본질로 인식하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일본 경제의 문제는 경기순환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이다. 이에 대한 정확한 문제인식의 결여가 일본을 ‘잃어버린 10년’에 빠뜨린 근본 원인이며, 이에 구조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 앞으로 ‘잃어버릴 10년’의 우려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최근 일본 경제의 재생에 대한 기대가 팽배해 있지만 구조적 측면에서 관찰하면 아직 낙관은 이르다고 본다. 우리가 이런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어떤 국민경제라도 성공의 신화와 위기의 경험을 동시에 갖게 마련이다. 그러나 지속적인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은 과거의 ‘성공신화로부터의 탈출’과 ‘위기로부터의 유효한 교훈의 습득’이다. 먼저 과거 한국 경제의 성공을 가져왔던 3대 성공신화 즉 ‘고도성장의 신화’, ‘한국주식회사의 신화’, ‘경제제일주의의 신화’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성공신화로부터의 탈출’ 즉 기존의 ‘경제운영 틀’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 없이는 변화하는 세계경제 속 에서 한국이 앞으로 생존, 발전하기는 어렵다.

IMF 경제위기는 한국이 기존의 경제운영의 구조적 문제점을 반성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위장된 축복(disguised blessing)이었다. 그러나 한국은 위기의 배경과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함으로써 적절한 교훈을 얻는데 실패했다. 오늘날 위기론이 나온 배경도 바로 이런 실패 탓이다.

우리 경제의 위기를 구조적인 측면에서 보면 다음과 같다. ▲취약한 국제경쟁력 구조 ▲경쟁력을 보장해 주는 경제시스템에 대한 확신의 결여 ▲이로부터 초래되는 경제운영 원리의 불투명성 ▲대외 의존적 경제구조이면서도 세계경제 흐름에 대한 인식의 부족 ▲이 흐름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국민의식과 경제운용 방향 ▲경제와 비경제 부문간 국정운영 원리의 일관성 결여 등이다. 바로 우리가 직면한 위기구조의 본질이다. 게다가 경제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는 경제외적 측면(안보, 남북문제, 대미 공조의 변화 방향, 정치의 안정여부 등)까지 고려하면 위기의 구조적 성격은 보다 심각하다. 이런 구조적 성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위기이다. 결국 우리 경제의 위기는 ‘위기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위기’로 규정할 수 있는 셈이다.

경제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 시급

WEF와 IMD 등 주요 국제 경쟁력 평가기관의 분석에 의하면 한국경제는 IMF 위기 이후 급격히 경쟁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다가 2000년을 고비로 이전 수준으로 다소 회복하였다. 그러나 다시 2002년 이후 회복세가 둔화되고 있으며 IMD의 평가에 의하면 오히려 하락세로 반전하고 있다. IMF경제위기를 겪으며 각 분야마다 구조개선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경제의 외형적 성과에 비해 취약한 경쟁력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어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더불어 완성되는 새로운 세계경제질서(Boardless Economy, Globalization, Knowledge-based Economy)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경쟁력을 유지 발전시키면서 생존해 갈 것인가, 그러기 위해서 어떤 경제시스템을 채택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계속 부딪혀 왔으나 아직도 분명한 답을 찾지 못하는 것 같다. WTO의 뉴라운드 출범, 중국의 WTO 가입, 지역간 자유무역협정 체결의 증가 등 국제환경의 변화는 우리가 생존하고 계속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우리 경제의 경쟁력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를 해야 하는 단계에 와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 경제의 최대 이슈는 경쟁력이며 이 경쟁력은 그것을 유지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경제시스템에 대한 분명한 선택 없이는 절대로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이를 보장하는 유일한 시스템이 시장경제 체제이다. 시장경제는 정부가 말로만 한다고 해서 되는 제도가 아니다. 경쟁력을 유지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경제시스템에 대한 지도자들의 확신과 일관성 있는 선택, 그리고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가능하다. 시장경제를 한다는 것은 경쟁원리, 즉 유인과 징벌(incentive & penalty)의 원칙, 수요자 중심적 orientation, 완전한 국제화(개찰구 없는 개방화)의 세 요소가 경제의 모든 부문에 정착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장에 대한 정부의 역할을 분명하게 설정하여 시장의 것은 시장이, 정부의 것은 정부가 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전제되어야 한다.

시장경제의 원리와 부합되는 정부 역할의 설정이나 정책수단의 채택은 단기적으로 시장의 불안정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의 상충(Trade-off)을 극복하고 이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에 대한 과도한 국민적 기대를 자제시켜야 하는 매우 어려운 문제가 있다. 우리 국민은 강력한 정부나 정부의 각종 규제에 대한 깊은 저항의식이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모든 경제문제를 정부가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2중적 의식구조를 지니고 있고, 시장경제에서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 기업들 역시 시장경제에서 가혹한 경쟁을 견뎌낼 각오가 되어있지 않으며, 정부규제는 철폐하라고 하면서 정부의 보호막은 온전히 지속되기를 바라는 생각을 지닌 경우가 많지 않은가 반성해야 한다.

즉 시장경제와 글로벌 스탠다드를 추구해 나가는 데 있어서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걸림돌은 정치권, 정부나 관료 뿐 아니라 기업이나 국민 일반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비시장적, 폐쇄적 사고와 체질이다. 국민의식 속에는 개인주의보다는 집단주의적 의식구조, 가열된 경쟁과 분명한 승자와 패자의 구분보다는 적당한 타협과 하향 평준화, 기회의 평등보다는 결과의 평등에 대한 선호, 국제화를 추구하더라도 우리에게 유리한 경우에만 해야 된다는 의식 등 시장경제와 조화되기 어려운 요소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특히 정부나 정치지도자들이 경제 및 관련 분야의 정책을 일관성 있게 운영하지 않고 국민의 인기를 염두에 두고 그때그때 적당히 대중 영합적으로 결정하는 경우 시장경제의 원리는 수사(修辭)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시장경제에 부적합한 성향을 지닌 우리가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험난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방향으로 우리의 체질과 인식을 바꾸는 것 외에는 대안이 전혀 없다.

소위 세계화(Globalization)의 개념에 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으나 “생산물은 물론 생산요소까지 자유로운 국경 간 이동 현상이 심화되는 가운데 이를 바탕으로 기업경영이 국경을 초월하여 이루어지는 현상과 이를 향하여 국가의 모든 제도와 정책이 변하여 가는 과정”으로 정의할 때 그 실체는 분명해진다. 세계화의 기업적 의미에 주목해야 그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세계화 현상은 국가와 기업, 개인 등 당사자의 호ㆍ불호, 선택 여부와 관계없이 진행되는 세계적 추세이다.

우리식대로보다는 세계식으로 살기 택해야

Thomas Friedman(NYT 칼럼니스트)은 그가 쓴 ‘The Lexus & The Olive Tree’에서 이런 세계적 추세와 이에 통용되는 새로운 ‘게임의 법칙’을 밝히면서 세계는 이에 따르는 길(이를 Lexus라고 칭함)을 걸으려는 사람과 이를 거부하고 기존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태도(이를 Olive Tree라 칭함)를 갖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과 반목이 심화되는 현상을 지적하고 있다. 기존의 보수와 진보의 논쟁은 실질적으로 별 의미가 없으며 이런 추세를 인정하고 이 ‘게임의 법칙’ ,즉 글로벌 자본, 자유시장규범 및 제도, 의식과 행태 등에 참여할 것이냐 아니면 이를 거부하고 독자적이거나 과거지향적 사고와 행태에 집착하고 그 결과 세계경제에서 도태될 것이냐의 문제만 남아있다고 Friedman은 보고 있다.

‘Lexus’는 ‘Olive Tree’로부터 주로 그 무차별성과 무자비함 때문에 강한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응하는 최선의 방책은 우선 이 길의 논리와 작동원리를 이해하여 이 길을 택함으로써 받는 혜택을 최대한으로 늘리고 그 고통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라고 Friedman은 말한다. 우리는 이런 추세로부터 국가적 이익을 가장 많이 향유할 수 있는 나라 중의 하나임에도 이에 대한 국가 사회적 인식이 적절하지 못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점이 큰 문제이다.

우리나라가 당면하고 있는 국정혼란과 사회적 갈등의 본질 역시 Olive Tree와 Lexus의 선택의 기로에서 맞는 갈등과 반목의 관계로 해석할 수 있다. 잘 살기를 원하면서도 이를 위해 힘들고 어렵더라도 세계가 보편적으로 추구하고 인정하는 ‘세계 식으로 살 것’에 대한 국가적 선택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빠져있다. 북한처럼 ‘우리 식대로’ 살려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잘 살기를 바라는 모순적인 국민의식을 지닌 탓이다.

중앙일보 여론조사(2003. 4. 28)에서 국민의 절반 가량이 ‘기업을 좋지 않게 생각한다’고 응답했고, 특히 대기업과 재벌은 57.3%가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다국적 여론조사 기관인 테일러 넬슨 소프레(TNS)가 세계 33개국 정규직 근로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2002년 11월) 자료에서는 직장에 애착을 지닌 한국인은 10명중 3명에 불과해 조사대상 중 최하위(33위)를 나타냈다. 우리 사회의 반(反) 기업, 반 시장 정서가 심각한 수준이며 건전한 직업관도 뿌리가 내리지 못했다는 얘기이다. 이는 자유시장경제의 근본을 흔드는 바탕이 될 수도 있다.

지도층은 이에 대한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시장경제체제 유지를 위한 노력과 비용을 지불할 각오를 해야 한다. 특히 학생과 젊은이를 대상으로 체계적인 경제교육에 힘을 모아야 한다. 자유시장경제 체제가 가장 발달한 미국은 유치원 시절부터 전 국민을 대상으로 각종 경제교육 프로그램 등을 운용하고 있다. 이에 덧붙여 Noblesse Oblige는 지도층 인사들이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할 규범이다. 건전한 경제ㆍ사회체제의 유지 발전을 위한 비용부담 의식과 적정한 ‘부의 사회 환원’은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유지하고 노사의 대립, 빈부의 대립, 세대의 대립 관계를 근본적으로 극복하여 우리가 추구하는 자유시장경제 체제의 존립과 발전을 담보해주는 중요한 밑바탕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