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 A11면

중소기업연구원 원장 재임이후 : 2004년 7월 19일


[다산칼럼] 경제추락도 일본 닮을 것인가


최근 다른 나라들의 경제모습과 대비되면서 우리경제에 대한 위기의식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중국은 물론이고 비교적 저조했던 미국경제도 초 저금리기조를 바꿀 만큼 상향 국면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장기 침체의 대명사와 같았던 일본경제가 길고 긴 터널을 벗어나는 모습이다.
그러다보니 새삼 일본 경제와 우리 경제를 비교하면서 일본 경제가 빠져나온 '장기·복합불황'의 터널에 우리는 이제 들어서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팽배해지고 한편으로 일본을 부러워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일본을 괴롭혀 온 이 장기불황의 진정한 원인과 배경에 대한 이해가 충분한 것 같지는 않다.

일본 역시 그랬다. 그 이전에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심각한 불황이 수년째 계속될 때에도 일본 정부의 경제정책 담당자들은 물론 대부분의 민간 경제전문가들조차 이 현상을 유효수요의 부족에서 비롯되는 통상적 경기순환 현상 이상의 구조적 문제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그들이 하나 같이 믿었던 경기순환 과정의 바닥은 그 끝을 모르고 내려앉았다.
결국 일본은 소위 '잃어버린 10년'속에서 90년대 전부를 보내고 지금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경기가 바닥을 칠 때마다 각종 이름으로 9차에 걸쳐 무려 1백23조엔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썼지만 효과가 없었다.
일본 사회나 정부가 이런 현상을 경기순환 과정을 넘는 일본 경제의 구조적 문제의 노출, 그리고 이의 수습과정에서 초래되는 결과적 현상일 뿐이라는 것을 어느정도 인정하기 시작한 건 90년대 후반에 가서 이런 추세가 되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진행되고 난 뒤의 일이다.

일본의 장기불황은 금융 부동산 시설 고용 등에 낀 거대한 거품이 붕괴되는 형태로 시작됐지만 그 배후에 있었던 보다 본질적이고 구조적인 일본경제의 문제는 바로 일본의 성공을 가져다 준 일본 특유의 경제·사회구조 그 자체였다고 본다. 흔히 '55년 체제'라고 불리는 것이다.

정(政)·재(財)·관(官)의 공고한 철의 3각 구조, 흔히 일본주식회사로 불리는 정부 지도하의 선단식 기업경영 체제, 기업 내 종신고용제 등 독특한 노사관계 등이 핵심 요소를 이루는 체제다.
시장기능의 위축, 정부 역할과 시장기능이 적절히 구분되지 않는 이런 식의 일본경제구조는 필연적으로 공급자 중심의 경제구조가 되어 정부의 고성장 정책과 기업의 과도한 팽창적 경영 행태를 유발했고 각 분야에 거대한 거품이 끼게 된 것이다.
80년대 중반까지 일본 경제의 성공을 가져왔던 이 시스템이 그 이후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세계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 하에서 더 이상 유효한 시스템으로 작동하기 어려웠으나 이에 대한 국가사회적 인식이 충분하지 못했다. 여기에 일본 사회구조의 경직성과 국가 지도력의 부재가 가세해 일본은 문제해결 능력을 보이지 못해 왔다. 심지어 '잃어버릴 10년'에 대한 우려조차 한편에서 제기되기에 이르렀다.
최근 일본 경제의 회복이 이런 문제의 본질이나 시스템의 문제들을 극복한 결과라고 속단하기는 아직 이르기에 일본 경제의 장기 향방은 여전히 우리 경제의 주목의 대상이 돼야 할 것이다.

급변하는 세계경제 환경 속에서 이 흐름과 조화되면서 우리의 경쟁력을 보장해주는 경제시스템에 대한 확신과 선택, 그리고 사회적 합의가 결여돼있는 게 우리 경제의 위기구조의 본질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 경제의 문제 역시 일본의 경우와 본질적으로 같다고 본다.
구조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대응하기보다도 주로 경기순환적 측면에서 위기 여부를 판단하는 우리 사회의 인식 수준도 일본의 경우와 다르지 않다. 다른 것이 있다면 기술에 뒷받침된 거대한 제조업부문의 생산력 등 10여년을 버틴 일본 경제의 체력에 크게 못 미치는 우리 경제의 체력이다. 여기에 더해 우리에게는 일본에는 없는 경제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치와 안보면에서 큰 불확실성 요소까지 있다.

일본 경제로부터 진정 유효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이를 국가경영에 깊이 참고하는 지혜가 정부는 물론이고 우리 사회 전체에 매우 필요한 때다.

ihkim@kosb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