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 A 11면

중소기업연구원 원장 재임이후 : 2004년 5월 14일


[다산칼럼] 북한 '시스템 실패'의 비극


용천 열차 폭발 사고와 일련의 수습과정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우선 무수한 인명과 북한기준으로는 엄청난 물질적 손실을 가져 온 사고의 비극성과 사고 이후 복구와 구호과정에서 다시 드러나는 북한의 참담한 실정이 주목을 끈다.
세계 각국으로부터 기피대상인 북한에 대해 구호와 치료,시설의 복구를 위해 모든 지원이 이어지고 있는 현상도 예사로운 일은 아니다.

특히 우리 남한으로부터의 지원은 그 신속성,규모,열성에서 그간 우리 스스로 경험했던 그 어떤 재해나 사고에 대한 정부와 민간의 지원을 능가한다고 생각한다.

북한 당국이 이 엄청난 사고의 원인과 배경을 조사해서 밝히고 그 책임을 추궁하는 노력을 전연 보이지 않는 점이나 사고 이후 이와 관련한 북한 당국의 자세나 남쪽에 대한 태도는 상식으로는 이해되기 어렵다.
사고 직후 이 엄청난 국가적 비극의 현장을 옆에 둔 채 북한 당국은 조선 인민군 창건 72돌 축하행사를 예정대로 성대하게 거행했다.
또 북한당국은 일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남쪽으로부터 지원될 구호 물품과 장비와 관련해 너무나 당연한 육로 수송을 거부하고 많은 시간이 걸리는 해상 수송을 고집했다.
세계 각국으로 도움의 손길을 받고 있는 동안 북한의 최고 국가 지도자가 사고 현장에 나타나 피해 상황을 살피고 피해자들을 위무하는 장면도 없다.

필자는 이런 모든 불가사의(不可思議)의 중심에 북한의 '시스템의 실패'가 자리잡고 있다고 믿는다.
철도를 경영한 경험이 있는 필자에게는 사고 직전 그 지점을 통과한 북한 최고 지도자의 방중(訪中) 귀환 특별열차를 위해 열차시간표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고도의 전문성이 결여되고,검토돼야 할 모든 요소들에 대한 세심한 주의가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 사고의 원인일 것이라는 일부의 추정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바로 북한체제의 절대성·경직성·비논리성이 갖는 이런 한계,이에서 초래될 수 있는 엄청난 비극의 개연성은 시스템적 시각에서 보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사고 이후 북한 스스로나 대남관계에서 보인 납득하기 어려운 일련의 자세나 태도도 이 '시스템의 실패'의 연장선상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현상일 것이다.

정말 심각하고 구조적이며 지속적으로 초래되고 있는 북한의 비극은 북한경제의 실상이다.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남쪽보다 오히려 높았던 1인당 국민소득을 가졌던 북한경제가 약 한 세기 동안에 남쪽의 약 30분의 1인 세계 최빈국 수준으로 전락하고 이로부터 그 국민의 대부분이 아사와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게 된 경제의 추락도 이 '시스템의 실패'로서만 설명 가능하다.

북한경제의 침체는 일시적 현상이나 자연재해로 인한 결과가 아니고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일반적인 비효율성에다 북한이 스스로 '우리식'이라고 부르는 북한식 국가와 경제운용 방식이 더해져서 초래되는 구조적이고 추세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문제에 대한 우리 남쪽의 인식과 대응 방향이다.
북한 당국이 사고의 원인과 책임을 밝히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또 납득할 수 없는 자세나 어떤 대남태도를 보이건 이에 대한 비판도 없고 대북 지원 열기가 영향을 받지도 않는다.
이런 식의 조건 없는 대북지원 방식이 과연 정상인지,또 장기적으로 북한 주민을 빌트인(built-in) 된 구조적 비극에서 벗어나게 하는 방향으로 기여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하고 균형 있는 분석과 토론도 우리 사회에서 실종돼 버렸다.

'시스템의 실패'의 교정 없이는 북한의 현 상황이 근본적으로 개선될 수 없고 나아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남북관계의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본다.

시간은 걸리더라도 또 완곡한 방법을 통해서라도 북한의 이 실패의 교정을 조금이라도 유도하는 방향이 대북정책의 기조가 돼야 하고 국민적 합의가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현실은 이와 정반대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우리도 북한과 같이 '시스템의 실패'에 들어서고 있는 것이 아닐까?

ihkim@kosb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