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das No.3 (2004년 5월호) 12~15면

중소기업연구원 원장 재임이후 : 2004년 5월 10일


‘달란트의 비유’가 한국경제에 주는 교훈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달란트의 비유’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신약성서 마태복음 25장에 있는 이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어떤 사람이 세 사람의 하인에게 차례로 금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기고 타국으로 여행을 떠난다. 성경사전에 의하면 이 때 금 한 달란트는 34.27㎏이니 지금 우리 돈으로 약 5-6억 원 정도 되는 큰 돈이다.

오랜 여행에서 돌아온 주인이 이들과 결산을 한다. 다섯 달란트 받은 하인은 이를 밑천으로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고 두 달란트 받은 하인도 비슷하게 또 두 달란트를 남겼다. 주인은 이 두 하인을 향해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므로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길 것이며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리라”고 극구 칭찬 한다.

반면 한 달란트 받은 하인은 이 것을 그냥 묵혀 두었다가 그대로 주인에게 바친다. 주인은 격노하면서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네가 최소한 그 돈을 은행에 맡겨 이자라도 받아 본전과 같이 나에게 돌려 줘야 할 것이다” 하면서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마저 빼앗아 이미 열 달란트를 가진 자에게 더하여 준다. 그러면서 그를 향해서는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쓸 데 없는 자를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다”고 저주한다.

성경에는 경제와 관련된 내용이 매우 많다. 어떤 경제학자의 분석에 의하면 성경의 전 내용의 약 1/3이 직ㆍ간접으로 경제와 관련이 있는 구절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비유는 경제와 관련되는 이런 수많은 성경 구절 중에서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원리의 핵심적 요소를 가장 잘 나타내는 내용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또 오늘의 세계경제 질서를 잘 예견한 것으로 가열되는 세계경쟁 속에서 한 국민경제가 가야할 길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경제에 주는 교훈이 크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인인 필자는 어릴 때부터 이 비유를 성경에서 무수히 읽었고 교회의 설교에서 자주 인용되는 것을 들어왔지만 요즈음 새삼스럽게 이 비유가 갖는 경제적 의미를 깊이 되 새겨 보곤 한다. 이 이야기는 예수께서 직접 한 비유로서 현대어로 쓰인 영어성경(Good News Bible)에 의하면 “그 때에 천국의 모습은 이러 하리라(at that time, the Kingdom of Heaven will be like this)”라는 말로 시작한다. 단순한 이야기 꺼리가 아니고 천국의 모습을 예수께서 직접 묘사한 매우 흔치 않은 비유이니 의미심장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 내용을 깊이 생각해 보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음직한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천국의 모습과 너무나 다른데 주목하지 않을 수 없고 큰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받은 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은 게으름은 꾸중의 대상이 되어야겠지만 그래도 가장 적게 가진 사람은 동정을 받고 균형 차원의 사후적 배분을 받는 것이 상식이고 대개의 사람이 상상하는 천국의 모습일 것이다. 그런데 이 비유는 전연 다르다. 동정이나 사후적 배분은커녕 그나마 가진 것도 빼앗기고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이 이 것을 더해서 가진다. 이 것이 천국의 한 모습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독교의 천국의 일반적인 환상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 것이다. 어쩌면 무한 경쟁으로 특징 지워지는 세계 경제의 모습 또는 T. Friedman이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제시하고 있는 메시지 바로 그 것일 것이다.

인간 개개인이 가진 능력에 큰 차이가 있다는 것(according to his ability)이 전제되어 있고 이 차이에 따라 주어지는 달란트의 크기가 크게 다르며 그 성과도 당연히 크게 달라진다는 것을 분명히 한 내용은 연장선상에서 세계경제 속에서 어떤 국민경제의 현재의 모습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이 비유 속에는 왜 능력의 차이가 있는지 설명이 없고 이에 대한 불평을 하거나 이를 받아드리는 묘사도 전연 없다. 아마도 신(神)의 영역이기 때문이리라. 이보다 주어진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인간의 본분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리라. 한국경제가 당면한 문제의 여러 측면과 비교하여 얻을 교훈이 크다.

필자는 이 모든 과정과 결과에 적용되고 있는 엄격한 ‘유인과 징벌(incentive & penalty)의 원칙’에 특히 주목한다. 경쟁원리의 핵심이며 시장경제를 경쟁력 있는 체제로 만드는 가장 본질적 요소인 이 원칙이 성서에서 천국의 한 모습으로 이렇게 분명하게 기술되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시장경제는 경쟁원리에 서 있고 경쟁원리의 핵심적 요소는 바로 이 ‘유인과 징벌’의 원칙이다. 이 원칙이 분명하게 서야만 시장경제는 비로소 제대로 작동한다. 그런데 이 원칙에 대한 분명한 인식도 없고 이를 확실하게 세우려는 어떤 의지도 없으면서 말로만 시장경제 하겠다는 허구(虛構)가 판치는 것이 오늘의 한국경제의 실상이며 한국경제의 모든 문제는 여기서 시작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작년 한국경제는 경기의 전반적인 하강과 이로 인한 낮은 성장률과 실업의 증가 등 저조한 실적을 보였다. 노동시장의 경색, 금융시장의 불안, 부동산 투기와 신용불량자 양산, 무엇보다도 국내외 투자자들의 투자심리와 소비자들의 소비심리가 극도로 위축되는 등 많은 구조적 문제점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났다. 금년도는 전망이 엇갈리고 있어 희비가 교차하는 분위기이지만 비교 대상국들에 비해 크게 떨어져 있던 종전의 전망을 수정할 정도로 낙관적인 전망을 하기는 아직 이른 것 같다. 여기에 대통령에 대한 탄핵절차의 진행이라는 헌정 초유의 사태를 맞아 경제가 어떤 영향을 받을지 가늠하기 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한국경제는 내외의 깊은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고 또 다른 ‘경제위기론’까지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위기극복의 길을 찾기 위해서는 이런 현상 자체보다도 그 배후에 있는 한국경제 위기구조의 본질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 평소의 필자의 생각이다.

우선 노무현 정부의 경제운영 실패의 시작은 그 첫해 보인 저조한 실적 자체보다도 정부가 처한 대내외 어려운 정책 환경을 국민들에게 솔직히 설명하고 그 환경 하에서 국민들이 공감하고 동의할 수 있는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경제 정책방향을 제시하지 못한 데 있다. 또 경제와 표리의 관계에 있는 노사, 교육, 복지, 의료 등 관련 분야의 운영원리를 경제와의 관계에서 일관성 있게 제시하지 못한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이런 상황이 지금 대내외 기업들의 예측가능성을 심하게 떨어뜨리고 불확실성에서 헤매게 되는 배경이 되는 것이며 투자수요가 위축되고 성장의 정체와 고용의 축소라는 심각한 경제현상은 이런 배경에서 당연히 도출되는 결과일 뿐이다.

정부는 집권 첫 해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도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지 못하고 경제 현안의 해결방향을 모색함에 있어서 일관성 있는 정책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우선 우리 경제의 취약한 국제경쟁력 구조에 대한 깊은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경쟁력은 오로지 이를 보장해 주는 경제시스템 하에서만 나온다는 사실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 이 정부는 그 동안 이 정부를 지배했던 이런 확신의 결여 및 이로부터 초래되는 경제운용 원리의 불투명성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경제와 비경제 부문 간 국정운영 원리의 일관성을 조속히 회복해야 한다. 대외 의존적 경제구조 하에서 세계경제 흐름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없고 이 흐름과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경제운영의 기본적인 틀을 재정비하지 않고 정부 스스로는 물론이고 세계경제의 흐름과 조화되지 못하는 국민의식을 가지고도 경제가 잘 되기를 바란다면 이는 ‘연목구어(緣木求魚)’일 것이다.

‘열린 시장으로의 길’로 요약될 수 있는 이런 방향으로 경제운영의 큰 틀이 바뀌기 까지는 대내외 투자가들의 투자심리에 발동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이 발동을 거는 것이 모든 경제현안 해결의 출발점이다. 즉 적정 성장과 고용 수준의 회복, 노사관계의 안정 등의 현안은 기업과 근로자 등 시장참가자들의 투자심리의 회복과 활동 결과, 그리고 이에 대한 시장의 반응에 따라 ‘선 순환’의 길로 들어 설 것이다.

시장으로 돌아와 시장에서 경제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정부가 반드시 유념해야 할 몇 가지가 있다. 먼저 시장에 대한 정부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일이다. 이는 시장에 대해 정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가리는 것이며, 시장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시장에 맡기고 시장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영역을 찾아서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이런 방향으로 정부의 역할을 바꾸어 가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은 우리 정부의 조직원리다. 그간의 정부의 의도적인 개발 노력 과정에서 정부 조직은 자연스럽게 수요자보다는 공급자 위주의 오리엔테이션을 가지게 되었고 기능별 역할보다는 산업별, 품목별 위주의 조직원리가 지배해왔다.

그 결과 정부 각 부처가 사실상 공동행위의 온상이 되어 있고, 정부의 지도 하에 수많은 사업자 단체를 통해 각종의 경쟁 제한적인 조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시장경제체제에서 경제정책의 핵심이 되어야 할 경쟁(競爭)정책의 최대 적이 기업이 아니라 정부 그 자체인 것이 한국경제의 오늘의 현실이다. 정부 조직이 공급자 보다 수요자를 중심으로, 산업 자체보다는 기능적 역할에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개편되지 않으면 이런 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고 시장경제는 허구(虛構)에 불과할 것이다.

경제의 성과는 정부가 아닌 시장이 만든다. 따라서 우리 경제와 같이 구조적 문제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경제의 경우, 경기를 인위적으로 부양하려고 하는 경우에는 필연적으로 그 구조적 왜곡을 심화시키고 시장원리에 의한 문제해결 노력을 저해하게 되어 있다. 어렵지만 정부가 경기진작책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기예측의 부정확성에 대한 인식과 오늘의 우리 경제의 왜곡된 구조의 대부분이 정부의 인위적인 경기정책의 결과라는 사실에 대한 깊은 반성이 필요하다.

요즈음 나라 안에서 소위 진보를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은 세계화 추세에 따르기를 거부한다. 하지만 세계가 그렇게 간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단일화되어 가는 시장에서 잃는 것 보다 얻을 것이 훨씬 더 많은 나라라는 점을 인식하고 이 세계화 추세를 우리가 걸어야 할 시장으로의 길과 연계하여 우리의 국익에 유리하게 활용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우리가 한 달란트를 받아 꽁꽁 묻어 두었다가 주인의 질책의 대상이 되는 하인의 신세가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IMF 위기’는 한국경제에는 역설적으로는 '위장된 축복(disguised blessing)'이었다. 바로 앞에서 제시된 길로 가지 않으면 한국경제가 살 길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 ‘위기로부터 적절한 교훈’을 얻는 데 실패했다.

전 정부는 외환보유고의 증가를 근거로 ‘IMF 졸업’식의 위기극복 업적을 홍보하는 데 급급함으로써 위기구조에 대한 국민의 바른 인식과 고통 감내(堪耐)에 대한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내버렸다. 구조개혁만 해도 그렇다. 만만한 기업 부문과 금융 부문의 부분적 구조조정에 그치고 보다 본질적이고 진정한 의미의 구조개혁 즉 정부의 기능과 역할의 변화, 노사관계 규범의 재정립 등은 방기해 버렸다. 그러면서도 몇 가지 낙관적인 전제를 달면서 끊임없이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는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전달하려고 한 위기 대처 방식은 오히려 위기구조를 심화시켜 왔다.

현 정부도 역시 이런 문제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우리 경제에 진정 필요한 것은 위기구조의 본질에 대한 내과적인 진단과 처방이다. 그런데 이 정부도 이 것은 제쳐 놓고 주로 외과적인 처방이나 치료에 신경을 쓰는 경제 운영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정말 우리는 날이 갈수록 단일화되어가고 무한 경쟁의 장으로 바뀌어 가는 세계경제 환경 속에서 우리 국민경제가 어떤 길을 걸어야 한국경제가 생존하고 계속적인 번영을 할 수 있을지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결론은 자명하다. 경쟁력 있는 경제는 오로지 경쟁적 경제구조에서만 생긴다. 그런데 시장경제 시스템은 이런 경쟁적 구조를 보장해주는 유일한 경제시스템이다. 또 이 시스템은 그 자체 세계의 경쟁력 있는 국가들이 예외 없이 추구하는 ‘글로벌 스탠다드’이기도 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시스템은 엄격한 ‘유인과 징벌의 원칙’위에 서 있다는 것이다.

세계 속에서 우리 경제가 가야 할 길 그리고 우리 경제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의 해결의 기본방향을 글 의 앞부분에서 서술한 ‘달란트의 비유’ 속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필자는 믿는다.

그런데 이 비유 속의 천국과 정반대의 모습으로 우리경제의 앞날의 이상적 모습을 그리고 있는 지도자들이 이 나라에 너무 많은 것 같아서 진정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