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대화의 말과 글

중앙경제 『이아침에』란 기고
대외경제조정실장 재임시 : 1992년 5월 22일


남북간 협상 또는 협의를 하면서 나는 영어도 아닌 우리말로 대화를 하는데도 「왜 이렇게 어려운가」하고 느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것은 물론 남북대화의 성격자체에서 오는 요소가 주가 되지만 분단 50년의 산물인 언어와 표현의 차이에서 오는 측면도 적지 않다고 본다.
쌍방총리가「서명한다」고 할 경우 북측은「수표한다」로,「논의를 종결(마무리)한다」는 「논의를 결속한다」로, 「승부가리기」는 「승벽내기」로 표현하는등 언뜻 들어서는 그 뜻을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부터 두음법칙을 인정하지 않고 「립장」, 「리용」, 「련결」등 모든 모음 앞에서 「ㄹ」 로 발음하는데서 오는 이질 감, 「긴장하다」가 우리의 「바쁘다」의 뜻으로, 「바쁘다」는 「어렵다」는 뜻으로 쓰이는 등 그 예는 무수히 많다.

또 최근에는 제7차 남북고위급회담에 온 북한의 연형묵총리가 벼에 생기는 「벼물코끼리」 벌레에 대한 공동방제(共同防除) 필요성을 언급하였는데 우리측에 서는 「벼물바구미」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내는데 관계자들이 애를 먹은 적도 있다고 한다.

협정문안을 정리하는 단계에서는 위와 같은 근본적인 용어의 차이뿐만 아니라 표현이나 느낌의 미세한 차이조차도 서로 상대방의 것을 선뜻 수용하기 어려운 남 북간 관계의 특수성 때문에 양측이 다 수용할 수 있는 용어를 찾느라고 의외로 많은 시간을 소비할 때가 많았다.

예컨대 우리가 「세부적인 사항」이라는 표현을 쓸 때 북측은 「세말적인 사항」으로, 「효과적으로」라는 표현대신 「성과적으로」라는 표현을, 「다각적인」 이라는 표현대신 「다방면적인」이라는 표현을 주로 쓰고 있다. 이 경우 상대방의 표현을 받아주어도 대세에 관계가 없으나 이질적인 표현을 선뜻 받아들이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언어란 마음과 생각의 외적 표현인 동시에 인식과 사고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따라서 남북간의 대화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없애고 남북간 협상을 효과적으로, 또는 북측용어로는 「성과적으로」 진전시키기 위해선 남북간 사용언어의 이질적 요소를 해소하는 사업들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민족동질성회복을 위해서도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된다. 아무튼 민족의 숙원인 통일을 위하여 각 분야에서 상호 이질성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빠른 시일 내에, 또는 북측 표현으로는 「속도있게」 진행되기를 기대한다.